[광화문에서/박원재]금감원 팀장들의 해병대 훈련

  • 입력 2009년 6월 26일 02시 58분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자신이 거느린 금감원 팀장들이 영 마뜩찮았던 모양이다. 그는 5월 초 간부회의에서 “팀장 이상 간부들은 대외활동이 많은데 보고하거나 발표할 때 자신감이 너무 없다”며 패기를 키울 방안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나이 50에 가까운 팀장들에게 해병대 훈련을 시키자는 아이디어는 그렇게 해서 나왔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금융계에서 영원한 ‘갑(甲)’으로 통하는 금감원 중견간부들이 자신감이 없다는 데 동의할 금융회사 임직원들이 몇 명이나 될까. 자신감이 자기 확신으로 굳어져 민간의 이유 있는 항변조차 외면하거나 윽박지르는 사례는 없는지 찾아보는 게 순서가 아닐까.

김 원장은 한국은행법 개정 논란, 정확히는 ‘금감원이 독점한 금융회사 감독권을 한은에도 주는 방안을 둘러싼 공방’에서 금감원이 수세에 몰린 것이 불만스러웠다고 한다. 실제로 한은 실무자들은 국회와 언론을 상대로 자신들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편 반면 금감원은 절박성이 떨어져서인지 비교적 점잖게 대응했다. 양측 모두 ‘한국 금융의 선진화’와 ‘금융시장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한 꺼풀 벗기면 본질은 밥그릇 다툼이다.

이 문제가 두 기관의 사활을 건 분쟁으로 번진 것은 금감원의 정보독점욕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조차 금감원의 정보를 제공받으려면 대학동창 같은 연줄을 동원해야 할 판이라고 탄식할 정도다. 한은과 금감원이 정보공유 범위를 확대하고 공동검사를 활성화하는 절충안에 합의했지만 9월 정기국회에서 법 개정안이 논의될 때쯤이면 또다시 한바탕 소란이 빚어질 것이다.

그렇더라도 한은에 금융회사 감독권을 주는 것은 개인적으로 반대다. 금감원을 편들어서가 아니라 또 한 명의 상전을 받들어야 할 민간의 처지가 딱하기 때문이다. 한은까지 감독권을 꿰차고 나면 다음 수순으로 퇴직자용 감사 자리를 챙기려 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금융회사들은 지금도 막대한 금액의 금감원 예산을 감독 분담금 명목으로 책임지고 있다. 지난해 금융위기로 은행, 증권, 보험, 저축은행 등 모든 금융업계가 고전했지만 1년 전보다 150억 원 많은 2454억 원을 금감원에 냈다. 외국에서 감독 분담금은 당국이 시장 리스크에 대비하는 방법을 민간에 알려주는 컨설팅에 대한 대가의 성격이 강하다. 권력기관에 바치는 상납금이 아니다. 컨설팅의 질이 좋아지지도 않았는데 해마다 분담금만 늘려 받아가는 모습이 금융회사 눈에 곱게 비칠 리 없다.

금감원은 최근 기업 구조조정 대상을 가려내기 위해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하는 채권은행들에 e메일을 보내 몇몇 기업을 워크아웃 대상인 C등급으로 분류하라고 권고했다. 해당 기업을 누구보다 잘 아는 채권은행의 결정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다. 지금 시장이 원하는 것이 이런 식의 자신감은 아닐 것이다.

해병대 훈련을 떠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며칠간의 업무공백을 무릅쓰고 해병대에서 한은과의 일전에 대비한 정신무장을 할 만큼 금융시장 상황이 한가롭지 않다. 금감원 팀장들이 유격훈련을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시장은 더 긴장할지 모른다.

금감원은 지난해 금융 서비스에 충실하겠다며 감독국이라는 명칭을 서비스국으로 바꿨지만 서비스가 개선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부서 명칭에 어울리는 서비스 교육부터 받으라고 권하고 싶다.

박원재 경제부장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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