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형수의 밥 한 그릇

  • 입력 2009년 6월 24일 02시 59분


시골에서 가난하게 자란 친구 H는 형수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24세 때 남편과 사별한 형수가 1남 1녀를 훌륭히 키워 낸 것도 그렇지만 10년간 객지에 나가 공부하고 있는 자신을 위해 매 끼니 밥을 지어 아랫목에 묻어 둔 그 정성을 잊지 못해서다. “언제라도 도련님이 집에 오면 따뜻한 밥 한 그릇은 먹을 수 있어야 하고, 집에서 그렇게 해야 객지에서도 밥을 굶지 않는다”는 것이 형수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10년간 밥지어 아랫목에 묻어

덕분에 그는 타향살이 시절 언제 어느 때 집에 가더라도 금세 식지 않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식은 밥의 대부분이 다음 식사 때 형수의 몫이 되곤 했다는 것을 그는 나중에야 알았다. 그는 “지금도 시골집 아랫목의 내 밥 한 그릇이 눈에 선하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형수님이 묻어 둔 밥 한 그릇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론계 출신 C 선배는 자신의 고종사촌 동생을 늘 칭찬한다. 자신보다 더 자기 어머니를 잘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시골 출신의 고종사촌 동생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부산의 선배 집으로 유학 와 중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7년 동안 머물렀다. 대학을 마친 그는 대기업을 거쳐 중소기업인으로 성장했다. 장성한 이후 그는 “외숙모가 그때 먹이고 재워 주시면서 건사해 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나는 시골에서 농사나 짓고 있을 것”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실제 그는 1981년 외숙모가 작고한 이래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외숙모의 제사에 참석했고, 매번 봉투를 놓고 갔다. 또 명절 때마다 찾아와 외숙부에게 용돈을 드리고 간다. 선배는 “정작 나는 해외 출장과 근무 때문에 몇 번 제사에 빠졌는데 동생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어려운 시기에 그의 사업과 가정이 잘 굴러가는 것은 그런 마음가짐에 대한 축복일 것”이라고 말했다.

어디 두 사람뿐이랴. 나 역시 살아오면서 참 많은 분들한테 은혜를 입었다.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야 일러 무엇 하겠는가. 가르치고 훈육해 주신 스승의 은혜도 잊을 수 없다. 인생의 고비마다 끝없는 이해와 사랑으로 감싸 준 친구들의 우정과 지인들의 후의(厚意) 또한 잊지 못한다. 아비 된 기쁨과 보람을 안겨 준 자식들은 또 어떠한가. 사회적 성취와 가족 부양을 가능케 해 준 직장, 그리고 선후배의 보살핌과 격려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결국 수많은 타인들의 은혜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세상인심이 각박하다는 얘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은 내게 늘 따뜻했고, 세상 사람들은 내가 베푼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내게 되돌려 주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사람이다.

어려울때 받은 은혜 잊지 말자

최인호 씨의 소설 ‘상도(商道)’에 나오는 말이다. ‘남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타인으로부터 받은 은덕을 절대로 잊지 않는 일이다.’ 몇 해 전 어느 수도자한테서는 이보다 더 무서운 얘기도 들었다. ‘마땅히 갚아야 할 은혜를 갚지 않으면 내 자식한테서라도 빼앗아 가는 게 인과(因果)의 법칙이다. 우주의 운행이 빨라져 과거 3세대 안에만 갚으면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는 바로 다음 세대에 길흉이 나타난다’는 말씀이다.

‘신세를 질 줄 알아야 갚을 줄도 안다’는 얘기도 있다. 어려울 때 거리낌 없이 도움을 청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누군가가 내미는 손길을 흔쾌히 잡는 것도 인생의 지혜다. 분명한 것은 ‘은혜를 갚겠다는 마음만 갖고 있으면 언젠가 반드시 보은의 기회가 온다’는 사실이다. 당대에 신세를 갚지 못했다면 2대, 3대 후손에게라도 갚을 기회가 생긴다.

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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