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투데이]천사와 악마, 거품경제의 두 얼굴

  • 입력 2009년 6월 13일 02시 59분


만약 ‘거품’이 없었다면 지금의 세계 경제사와 금융사는 다른 방향으로 쓰였을 것이다. 모든 거품은 비슷한 연유로 시작돼 유사한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자산 가격이 터무니없이 오르는 거품은 돈을 찍고 그 돈을 헬리콥터에서 뿌리듯 시장에 유통시키고, 여기에 소비를 부채질하는 각종 신용팽창 조치에서 비롯된다. 1920년대 초중반 미국은 금융완화 정책과 더불어 자동차, 라디오 등에 대한 신용할부 판매와 은행의 부동산 대출 확대로 20세기 원조 거품을 만들었다. 일본도 달러화 가치가 떨어진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내수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리고 금융 규제를 푼 뒤 증강된 은행자본으로 대출을 늘려 부동산 거품을 만들었다. 그 결과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든 많은 돈이 한꺼번에 쏠리면 그 표적이 된 산업은 빠르게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철도와 가전, 자동차, 에너지, 항공, 정보기술(IT)과 첨단 금융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성장산업이 처음엔 기술 혁신과 당대의 시대적 요구라는 명분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신성장산업에는 실제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이 투하됐고 결국 과잉투자와 과잉소비로 인해 주가의 거품을 피할 수 없었다. 이 산업들이 한 시대를 질펀하게 풍미한 뒤에야 비로소 그 열기가 식었으며, 혹독한 구조조정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겨우 산업질서를 찾아갔다.

이런 거품 가운데 아마 가장 질이 나쁜 것은 부동산 거품일 것이다. 부동산 거품의 뒤끝이 고약한 이유는 집이라는 것이 어디로 옮기거나 쉽게 없앨 수 있는 재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미국 부동산 거품 문제의 해법이 쉽지 않은 것은 수년간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집을 지은 데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돈을 빌려 주택을 샀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단일 소비국인 미국의 주택 경기가 심각한 조정을 받고 세계가 여기서 터진 부실을 청소하는 가운데, 지금 세계 각국은 허약해진 수요를 보강하기 위해 또 다른 성장의 표적물을 찾고 있다. 2000년대 초 닷컴 열풍이 꺼지면서 세계 경제가 맛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돈을 풀고 주택경기를 부추겼던 것과는 반대로, 지금은 주택 거품과 금융 거품의 빈자리를 새로운 실물산업으로 채우기 위해 민관이 합동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거품의 역사가 자꾸 반복되는 이유는 당시의 거품이 진짜로 거품인지 아닌지를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세상의 모든 돈은 거품 사이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품의 두 얼굴, 그것은 사람들의 욕심이 만들어 내는 화려한 투기라는 ‘필요악’인 동시에 새로운 성장산업을 이끌어 내는 묘한 ‘천사’의 얼굴이기도 하다.

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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