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현]지자체에 법무전문관 도입 필요

  • 입력 2009년 5월 27일 02시 49분


풀뿌리 민주주의는 1930년대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처음 사용된 이래, 연방정치와 대의민주주의에 대응하는 지방 주민의 참여민주주의를 의미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직접선거가 실시되면서 본격적인 지방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개념이 대두되었다.

풀은 거대한 나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방에 흩어져 있는 여린 풀은 모두 자기 나름의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단단한 땅을 뚫고 솟아올라 푸른 잔디를 이루고 아름다운 벌판을 조성한다. 법치주의 역시 마찬가지이다. 연방 및 중앙의 대의민주주의와 지방 고유의 직접민주주의가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듯이 국가와 지방, 국민 개개인을 아우르는 법치의식이 선진 법치국가의 견고한 초석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중앙정부와 국회에 지나치게 많은 권력과 물적 자원이 집중되어 있는 반면,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가 충분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낭비와 부정부패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은 어제오늘의 지적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연 혈연 학연에 따른 공무원 채용 가능성이 높고, 어느 집단보다 감사 및 자체평가에 있어서 불투명하고 폐쇄적인 경향이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전국 230개 기초단체 중 50여 곳은 아예 독립된 감사 부서조차 없다고 한다. 지방자치는 결코 지역주의, 연고주의와 동의어가 아닐진대 최근 보이는 일련의 부패 사례는 지방자치 본래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감사원은 각 조직에 지위와 독립성이 보장된 감사담당 직을 설치하도록 하는 공공기관 감사에 관한 법률안을 준비 중에 있으며, 이때 감사담당자는 감사나 정책평가 경력이 있는 변호사 등의 외부 전문가로 충원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방안은 매우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된다. 내부 인력에 의한 감사가 힘들다면 외부 인력의 도움을 받도록 하자는 취지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역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제정하는 조례의 합리성을 검토하고 지자체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에 대한 법적 자문을 담당하는 개방직 법무전문관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법상 중앙 부처에만 존재하는 법무담당관의 경우 직급이 높아 예산의 한계가 있는 지자체가 활발히 이용하기 힘들다는 현실적 목소리를 반영하여 개방형 법무전문관을 5급 사무관으로 임명하는 방향으로 지방공무원법의 개정을 촉구하는 것이다.

시와 군 같은 230개 기초자치단체에 법무전문관을 전면 도입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힘들다면 1단계로서 16개 광역자치단체에 먼저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기관뿐 아니라 주의 모든 주요 정부기관에 법무담당관(General Counsel)을 두고, 부처의 법적 문제에 대하여 장관에게 법적 자문을 제공함으로써 법치행정을 실현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효율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나아가 정부 예산이 낭비 없이 지출되는지를 감시하여 납세자의 권리까지 보호하고 있다.

이제 지방자치단체는 운영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간의 폐쇄적인 조직을 재정비하고, 과감히 전문성과 독립성을 가진 외부 법률전문가로 하여금 조직 내의 법치를 실현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진정한 의미의 법치행정을 꽃피울 수 있다. 법무전문관 제도가 정착하면 풀뿌리 법치주의 실현과 전문 인력의 실용적 인사를 아우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김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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