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장택동]폴란드 민주화 20년…바웬사가 눈물 흘리는 이유

  • 입력 2009년 5월 25일 02시 51분


다음 달 4일 폴란드에서는 민주화 20주년 기념식이 성대하게 열린다. 1989년 6월 4일 실시된 총선에서 자유노조를 중심으로 한 재야세력이 승리해 42년 만에 공산정권이 붕괴된 것을 자축하는 행사다.

하지만 자유노조를 결성해 폴란드 민주화 운동을 이끈 당사자인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65)은 요즘 씁쓸한 표정이다. 그가 공산정권에 협조했다는 의혹을 놓고 법적소송이 벌어지고 있고, 자유노조 활동의 주무대였던 그단스크 조선소는 위기를 맞고 있다.

영국의 ‘선데이헤럴드’는 24일 바웬사 전 대통령이 최근 레흐 카친스키 현 대통령을 상대로 10만 즈워티(약 4000만 원)의 배상과 사과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바웬사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카친스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폴란드 폴셋TV와의 인터뷰에서 “바웬사가 1970년대 초 볼레크(Bolek)라는 가명을 쓰며 비밀정보기관의 정보원으로 활동했다는 것은 진실”이라고 말해 바웬사의 분노를 샀다. 그가 뒤늦게 소송을 낸 것은 민주화 20주년을 앞두고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라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그단스크 조선소의 위기도 바웬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대목이다. 1990년대 들어 그단스크 조선소는 경영이 크게 악화됐고 2002년부터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처지가 됐다. 2004년 폴란드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한 뒤 EU는 공정경쟁을 위해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고, 그동안 지급된 보조금을 돌려받으라고 폴란드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폴란드 정부는 자산매각과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노조는 강력 반대다.

바웬사는 현재 폴란드가 높은 실업률과 재정적자 확대 등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1990년 대통령에 당선돼 5년간 재임했던 그는 자신의 집권기간에 폴란드 경제가 크게 악화됐고 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그는 21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폴란드에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경제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며 “지금 돌아보면 (경제 발전의) 기회를 놓쳐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폴란드의 민주화 운동은 동유럽 전체에 민주화 운동을 확산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20년이 지난 지금 폴란드가 정치·경제적으로 좀 더 안정된 모습을 보였더라면 그 의미가 더욱 빛났을 것이고, ‘폴란드 민주화의 상징’ 바웬사의 어깨도 한결 가볍지 않았을까.

장택동 국제부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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