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종식]‘판사회의’ 불씨는 꺼진 게 아니다

  • 입력 2009년 5월 23일 02시 59분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개입 논란을 논의하기 위한 판사회의가 21일 서울고법 회의를 끝으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특히 부장판사 이하 법관 중 맏형 격인 서울고법 배석판사들이 “신 대법관의 재판권 침해는 인정했지만 거취문제에 대해선 신중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일부 판사들의 집단 반발 움직임은 한풀 꺾인 양상이다. 대법원은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제도 개선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악화될 수 있는 고비가 아직 몇 차례 남아 있다는 게 판사들의 시각이다.

먼저 전국법원장회의 개최와 이른바 ‘삼성사건’의 대법원 확정 판결이 겹친 29일이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날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최근 잇달아 열린 판사회의에 대해 의견을 밝힐 예정이다. 또 삼성사건은 이 대법원장이 변호사 시절 변론을 맡은 사건으로 판결 결과를 놓고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선 이 대법원장의 신 대법관에 대한 조치 문제가 또다시 이슈가 될 여지도 있다.

또 지난해 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을 할 때 재판 개입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형사단독판사 중 일부가 신 대법관에 대해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거나, 일부 소장 판사들이 집단 사표운동을 벌이는 상황을 가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둘 다 쉽게 호응을 얻긴 어려워 보인다. 형사단독판사들이 올 초 신 대법관의 인사청문회 때까지도 침묵하고 있다가 자신들의 인사가 난 뒤 언론을 통해 의혹을 폭로한 방식이 비겁하다는 의견이 법원 내부에서도 많기 때문이다. 문제 제기의 순수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또 이번 사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자 재판을 둘러싸고 촉발됐기 때문에 순수한 법관 독립운동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사건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많다. 과연 법관직을 걸고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고민을 하는 판사들도 적지 않다.

마지막 분수령은 대법원에 계류된 사건의 당사자들이 “신 대법관에게 재판을 맡길 수 없다”며 잇달아 기피신청을 하는 경우다. 이로 인해 재판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다른 재판부에 부담까지 준다면 신 대법관은 더 버티기 힘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신 대법관은 스스로 거취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들은 법원의 자정 능력을 또 한 번 가늠해볼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이미 문제가 됐던 법원 지휘부의 임의 배당권을 손봤고, 인사평정제도 등에 대해 개선책을 준비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소장 판사들도 분위기에 휩쓸려 집단행동을 하기보다는 법원의 신뢰회복을 위해 신중하게 지혜를 모으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이종식 사회부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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