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인호]엄격한 공정법, 글로벌 경쟁력 키운다

  • 입력 2009년 5월 23일 02시 59분


유럽연합(EU)은 13일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인텔에 반독점법 위반으로 10억6000만 유로(약 1조80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EU가 단일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08년 6월 인텔의 동일한 행위에 대해 세계 최초로 과징금을 부과했으므로 이번 EU의 조치는 우리나라에 뒤이은 셈이다.

언뜻 보면 경기침체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일이 과연 괜찮은지에 대한 논쟁이 있을 법도 하다. 그런데 그런 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인 닐리 크로스는 “인텔이 수년간 경쟁회사를 견제하기 위해 불공정 행위를 함으로써 유럽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쳐 왔다. 10억 유로가 넘는 과징금 규모에 놀랄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에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하는 조치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말이다.

경기침체 속에서도 반독점법의 강력한 집행 의지는 EU의 이번 사례로 한정되지 않는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도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상대적으로 느슨했던 반독점법 집행의 강화를 선언한 바 있다. 미 법무부의 크리스틴 바니 반독점 담당 차관보는 11일 “오바마 정부의 법무부는 독점 기업이 지위를 남용하여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을 경우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혀 적극적인 반독점법 집행 의지를 천명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경기침체로 기업의 사정이 어려우므로 공정거래법 집행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일부에서 제기한다. 공정거래법의 엄정한 집행은 세 가지 면에서 여전히, 아니 경기침체 속에서 오히려 더욱 중요하다.

첫째,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는 일은 기업경쟁력을 제고함으로써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핵심적인 수단이라는 점이다. 경기침체 속에서 기업에 대한 직접적 지원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겠지만 경쟁을 통한 경쟁력 향상은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과제이다. 미국이 경쟁당국을 경기침체 대응팀의 중요한 멤버로 참여시키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이 대공황 당시에 기업 간의 담합을 한시적으로 허용한 적이 있는데 이런 규제 유예가 경기회복을 오히려 지연시켰다는 사후적 평가도 꼭 기억해야 할 교훈이다.

둘째, 공정거래법은 경기침체 속에서 자칫 소홀할 수 있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최후의 보루가 된다는 점이다. 독과점 기업은 경기침체의 어려움 속에서 여러 손실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려고 할 가능성이 큰데 공정거래법은 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마지막으로 공정거래법의 엄격한 집행은 국내 기업이 미국과 EU 등 해외에서 처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사전 예방이 될 수 있다. 경제위기를 겪는 각국은 자국 기업 보호 차원에서도 외국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려고 하는데 이런 제재는 엄격한 반독점법 집행의 형태를 띨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기업의 활동범위가 글로벌화되고 각국의 경쟁당국이 반독점법 위반에 대한 강력한 처벌 의지를 천명하는 상황에서 한국에서만 잠시 처벌을 피하는 조치는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업 처지에서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인텔에 대한 EU의 조치를 시작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경쟁 제한적 행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기업도 국제적 조류를 잘 파악하여 무엇이 진정 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길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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