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창원]정책 엇박자, 더는 못봐주겠다

  • 입력 2009년 5월 20일 02시 58분


‘나쁜 것은 끊어야 한다’는 표어는 원래 금연 표어다. 흡연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은 이제 일반적인 상식이 됐지만 결심에 그칠 뿐 실제 행동으로는 쉽게 연결시키지 못하는 문제가 금연이다. 흡연처럼 뻔히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역대 우리나라 정부의 고질적 행태가 바로 ‘부처 이기주의’와 ‘정책의 엇박자’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정부 부처가 추구하는 정책의 목표와 수단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동일 정부 정책에 대한 부처 간 견해는 상이할 수밖에 없다. 부처 간 갈등은 필연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더욱이 정부 부처의 정책이 일사불란하다는 점 자체가 요즘 같은 지식정보사회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개별 정부 부처의 정책 방침이 상이하고 갈등 관계에 있더라도 정부의 전체 정책은 일관성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 부처 간 정책 조율과 조정은 ‘빡세게(?)’ 하되 정부 전체의 정책은 일관성을 갖고 자신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심야 학원교습 금지방안 백지화는 우리 정부 ‘정책의 엇박자’를 골고루 갖췄다. 정부 위원회 및 부처 간 정책 조율이 완결되지 않은 하나의 정책 방안이 정부 전체의 정책인 양 알려진 점부터가 문제였다. 시작부터 잘못된 셈이다. 사교육 억제는 전 국민의 관심사이고 현 정부의 대선공약이지만 사교육 억제라는 종속변수는 공교육 정상화, 대학 경쟁력 강화, 대학입시제도 정상화 같은 변수가 제대로 작동될 때에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위원회 및 정부 부처 간 정책 조율과 조정 미비로 사교육 억제라는 정부의 의지까지 의심받는 상황이 됐다. 이번 논란의 진짜 승자는 학원을 비롯한 사교육 기업이라는 비아냥이 바로 그 증거다.

물론 이번 논란은 미래기획위원회가 교육 관료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고도의 전략을 구사한 결과라는 이야기도 있다. 교사의 78% 정도가 심야교습 금지를 찬성한다는 최근 설문조사 결과도 있으므로 한나라당과 정부의 결정이 교육계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했는가 하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급할 때일수록 원론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정부 전체의 정책이다. 어느 세월에 부처 간 정책 조율 및 조정을 기반으로 사교육 억제, 공교육 정상화, 대학 경쟁력 강화, 대학입시제도 정상화를 동시에 추진하겠느냐는 주장도 있긴 하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성매매를 뿌리 뽑겠다며 대안 없이 집창촌만 폐쇄한 후 ‘풍선 효과’로 인해 오히려 통제되지 않는 성매매 업소가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정부가 추진하려던 심야 학원교습 금지방안도 공교육 정상화, 대학 경쟁력 강화, 대학입시제도 정상화 정책과 결합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하면 새벽 및 주말 학원반이나 고액과외의 기승 같은 신종 사교육 시장 확대를 가져올 것이 뻔하다.

정부 정책은 사전에 부처 간에 ‘빡세게(?)’ 격론과 경쟁을 거치되 일단 결정하면 정부 전체의 미션과 비전이라는 큰 틀 아래서 일관성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 현 정부 출범 후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발표 시기,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논란, 병원과 학교의 영리법인화 허용 등 수많은 정책이 부처 간 엇박자로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대통령은 18일 라디오 연설에서 “갈 길은 아직도 한참 남아 있다. 지금이 구조조정과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적기”라고 하는데 경제 수장은 “내년 봄엔 봄 같은 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은 이제 이명박 정부의 정책 엇박자가 지겹다고 한다. 정부, 나쁜 것은 끊어야 한다. 단, 결심에 그치지 말고 실천해야 한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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