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밖에서 온 아이디어, 루이비통을 재탄생시키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5월 16일 02시 54분


루이비통은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인 스티븐 스프라우스와 손잡고 그라피티 백을 선보였다. 사진 제공 에스콰이어
루이비통은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인 스티븐 스프라우스와 손잡고 그라피티 백을 선보였다. 사진 제공 에스콰이어
영화 감독 소피아 코폴라는 루이비통 제품 디자인에 참여해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추구하는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사진 제공 에스콰이어
영화 감독 소피아 코폴라는 루이비통 제품 디자인에 참여해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추구하는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사진 제공 에스콰이어
올해 2월 초부터 전 세계 루이비통 매장에는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스티븐 스프라우스의 그라피티(스프레이 등으로 벽에 낙서처럼 그림을 그리는 거리 예술)가 들어간 가방이 대체 언제 나오죠?” “소피아 코폴라가 디자인한 가방이 나왔나요?”

이쯤 되면 절로 의문이 떠오를 만하다. ‘스티븐 스프라우스와 소피아 코폴라가 누군데 루이비통 가방을 디자인한 걸까? 루이비통의 디자이너는 마크 제이콥스 아니었나?’

○ 스프라우스의 협업 실험

스티븐 스프라우스는 1990년대 미국 뉴욕을 주름잡던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다. 소피아 코폴라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마리 앙투아네트’ 등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영화감독이다.

마크 제이콥스는 1997년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뽑혔다. 루이비통의 모기업인 루이비통모에에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제이콥스에게 요구한 것은 간단했다. 젊은이들뿐 아니라 루이비통의 주 고객인 중장년층마저 구태의연하다고 여기는 루이비통의 대표 가방인 ‘모노그램 캔버스’의 이미지를 대대적으로 바꾸라는 주문이었다.

제이콥스는 소비자들이 식상해하는 모노그램 캔버스를 어떻게 하면 새롭고 신선하며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최신 유행 가방으로 바꿀 수 있을지 고심했다. 그의 선택은 친구이자 그래픽 아티스트인 스프라우스였다. 모노그램 캔버스에 스프라우스의 장난기 가득한 그라피티가 더해져 탄생한 제품이 2001년 나온 그라피티 백이다. 이 제품은 유행에 민감한 젊은 소비자, 젊어 보이고 싶은 중장년층, 그리고 아르노 회장까지 두루 만족시켰다. 그라피티 백은 같은 디자인의 모노그램 캔버스보다 30% 이상 가격이 비쌌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히트를 쳤다.

컬래버레이션(협업)의 위력을 깨달은 제이콥스는 일본의 아티스트인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와도 손잡고 ‘모노그램 라인’ ‘체리 백’ 등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루이비통 가방을 아티스트의 예술작품과 동일시하기 시작했고,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 패션 패러다임의 전환

루이비통이 올해 내놓은 스티븐 스프라우스 라인은 2003년 세상을 떠난 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기존 그라피티를 형광색으로 바꿔 ‘캐주얼하지만 고급스러운 가방’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정확히 만족시켰다. 반면에 소피아 코폴라가 만든 제품들은 캐주얼한 분위기가 아니라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최근에는 다른 명품 브랜드들도 아티스트 및 유명 인사들과 속속 손잡고 있다. 프라다는 일러스트레이터 제임스 진과 손잡고 독특한 일러스트레이션이 새겨진 가방, 신발, 의류 등을 선보였다. 에르메스도 추상화의 대가 요제프 알베르스의 작품을 재현한 ‘사각형에 대한 경의’라는 실크 스카프를 내놓았다. 질 샌더는 마크 로스코의 회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의상을, 돌체앤가바나는 비주얼 아티스트 줄리언 슈나벨로부터 영감을 받은 의상을 출시했다.

이 현상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외부 인사에게서 창조적 아이디어를 얻어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신선하게 바꾸고 매출을 늘리는 일은 컬래버레이션의 기본 장점에 불과하다. 기업은 이를 통해 성장기와 성숙기를 거친 후 쇠퇴하기 마련인 브랜드의 수명 주기를 바꿀 수 있다. 여기에 계절 변화에 따라 신상품을 내놓는 패션계의 제품 공급 주기까지 무너뜨리는 위력을 지녔다. 이것이 바로 패러다임 전환이다.

심정희 에스콰이어 패션 디렉터·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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