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용희]우리 시대 프로페셔널을 생각한다

  • 입력 2009년 5월 14일 02시 57분


어떤 경지에 오르기는 힘들다. 오죽하면 ‘개그콘서트’ 김병만 선생은 16년이나 같은 일을 계속해 경지에 올랐겠는가. 달인 김병만 선생은 말한다. “16년 동안 해봤어? 안 해봤으면 말을 마!” 그렇다. 달인의 경지에 오르는 일은 힘들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경지를 지켜나가는 자기 고투다. 얼마 전 가수 이소라 씨가 콘서트 공연을 끝낼 쯤 공연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객에게 환불해주겠다는 말을 했다. 관객들은 괜찮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티켓 환불을 해주겠다는 안내방송이 나갔다.

가수 이소라 환불은 자기와의 싸움

매우 이례적이다. 고객콜서비스 제도가 활발해지는 선진화된 사회이긴 하지만 이런 ‘자발적 리콜’은 흔치 않다. 이 씨의 노래는 관객 귀에 의해 이미 소비된 뒤였다. 그렇다면 이 씨가 싸우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과 대결하고 있다. 누군가는 쇼에 불과하다고 이죽거릴 수 있다. 리콜도 또 다른 상업적 전략이라고 조롱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부정을 스스로 까발렸다는 점, 자기 갱신을 위해 스스로를 던졌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 장인정신을 떠올려 본다. 프로페셔널 정신을 떠올려 본다.

프로페셔널 정신은 우리 시대가 내세우는 아이콘이다. 사람은 모두 프로가 되길 원한다. 수많은 자기개발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유도 이런 까닭에서이다. 일단 프로가 되고 나면 프로페셔널의 권위에 의지해 자기 타협이 이뤄진다. 대중은 권위에 압도돼 프로에게 손쉽게 열광하고 손쉽게 숭배를 바친다.

프로는 스스로의 권위에 취한다. 대중의 의례적인 열광에 도취하고 예전의 명성에 도취한다. 자기 게으름과 자기 방기에 빠진다. 진정한 프로페셔널은 뭔가를 더 성취하고 이룩하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끝없는 자기 부정, 자기 검열, 엄격할 만큼 계속하는 자기 연마를 통해 이루어진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신영옥 씨는 아직도 매주 레슨을 받는다. 세계적인 피겨스케이트 선수 김연아는 여전히 연습벌레다.

프로페셔널이 위대한 예술가나 천재에게만 속하는 항목이 아니다. 우리가 속한 여러 분야에서 고수를 본다. 무거운 보따리를 머리에 인 채 양손에 보따리를 들고 잘도 걸어가는 보따리장수 아줌마, 자신의 어깨높이보다 훨씬 높게 쌓은 연탄을 지고 오르막을 오르는 연탄배달부, 한 손으로 탁 밥알을 쥐었다 하면 백 알을 쥐는 초밥왕, 생활 속의 고수와 프로페셔널은 곳곳에 있다.

다만 사람들은 스승의 회초리를 맞아가며 프로페셔널의 기본기를 연마하기보다 다른 누구를 비난하기를 손쉽게 한다. 누구 탓하기를 밥 먹듯 한다. 성공한 누군가를 시샘하고 불공평한 게임이었다고 불평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낸다. 진정한 프로페셔널은 다른 이의 프로페셔널을 인정하고 자신의 프로페셔널을 끝없이 갱신하려는 자다.

우리 모두 남탓말고 끝없는 갱신을

사람은 제각각의 ‘달란트’를 갖고 있다. 천재성이 아니면 조그마한 재능이라도. 재능이 아니라면 조그마한 손재주나 솜씨라도. 신은 공평하다. 자기 자신을 연마하기는커녕 다른 누군가의 프로페셔널을 욕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능력도 있다. 잔재주다. 잔재주를 부리는 사람은 진짜인 듯이 보이게 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그러나 대중을 속일지는 몰라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대중을 단시간 속일지 몰라도 오랫동안 속일 수는 없다.

이미지와 광고가 과장된 우상과 허위의 권위를 만들어 내는 시대다. 자신이 지은 집을 허물고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용기, 자기를 철저하게 점검하는 정신, ‘진짜’가 있다면 바로 이와 같은 자기반성 능력, 프로페셔널 정신이 아닐까.

김용희 작가·평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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