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상철]유머의 정치, 폭언의 정치

  • 입력 2009년 5월 13일 02시 54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유머 연설이 뜨고 있다. 오바마는 9일 백악관 출입 기자단 연례 만찬회에서 공화당의 정적은 물론이고 자신의 부인과 딸, 동지인 부통령까지 유머의 대상으로 삼아 해학과 재치가 넘치는 연설로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풍유와 풍자, 해학과 재치가 있는 정치 지도자의 말은 정치를 부드럽고 여유롭게 한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2004년 공화당 전당대회 기조연설에서 자신이 주연한 ‘트루 라이즈(진짜 거짓말)’란 영화 제목을 인용하며 민주당의 전당대회야말로 진짜 ‘트루 라이즈’라는 유머로 연설을 시작하며 당원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 연설로 슈워제네거는 영화인의 이미지에서 정치인의 이미지로 변신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상대 정적을 비판할 때는 품격 있는 언어와 어휘를 선택하고 직유법보다 은유법으로 하고, 직설법보다 비유나 유추로 공략한다. 유머와 해학이 있는 정치 지도자의 말은 여유와 배려의 정치로 이어진다. 서구에서는 유머와 위트가 없는 정치인은 성공하기 힘든 반면 유머와 위트가 있는 정치인은 성공적인 지도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치 지도자의 말은 공동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은 정치 지도자의 말이 칼과 같아서 잘 쓰면 맛 좋은 요리의 도구처럼 공동체의 미래를 여는 길이 되고 잘못 쓰면 폭력의 도구가 된다는 점을 일깨웠다. 아름다운 비전을 담은 정치 지도자의 말은 공동체 구성원의 꿈을 심어 주는 힘이 되지만 히틀러와 레닌의 말과 언어는 폭력을 수반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언제부터인지 한국 정치에서 풍자와 해학이 실종됐다. 한국 정치에서 풍자와 해학까지 바라는 일은 무리이다. 일부 정치 지도자는 폭언에 가까운 말을 매일 쏟아낸다. 북한 핵실험 후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수구 꼴통, 전쟁광이라고 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에 조선노동당 2중대와 같다고 했다. 위의 사례는 폭언 정치의 극히 작은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여러 정당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문제는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가 폭언의 정치를 조장한다는 점이다. 상대가 발의한 법안을 MB 악법이라고 낙인찍으면 다른 쪽에서는 유아적 발상 혹은 소아병이라고 되받아친다.

폭언의 정치에서는 논리와 대화가 설 자리가 없고 상대를 낙인찍는 기법과 같은 감성적이고 자극적인 언어의 껍데기만 남는다. 폭언의 정치에서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용납되지 않으며 여유의 정치가 발붙일 수 없다. 자신과 소속 정당은 ‘선(善)’이고 상대가 ‘악(惡)’인데 어떻게 대화하고 타협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이처럼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정치 언어가 방송토론이란 권리로 교묘히 포장되고 대변인의 담화라는 이름으로 매스미디어의 이미지를 통해 여과 없이 우리 안방까지 전달된다.

폭언의 정치는 자라나는 세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폭언의 정치는 폭력과 힘의 정치로 이어질 개연성이 유머의 정치와 여유의 정치보다 높다. 폭언의 정치를 끊어야만 폭력과 힘의 정치가 사라진다. 폭언의 정치가 없어져야만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의 기초를 놓을 수 있다. 대화와 타협은 반대 의견의 수용이 아니라 반대 의견의 존재성의 수용으로부터 시작한다. 국민은 꿈과 희망이 있는 말, 여유와 유머가 있는 정치, 힘과 위안이 되는 말, 배려와 상생이 있는 위트의 정치 담화가 그립다. 국민은 원색적인 직설의 정치, 자극과 폭언의 정치를 듣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상철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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