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규인]복잡하고 비밀스런 ‘고교선택제’

  • 입력 2009년 5월 12일 02시 58분


“100명 중 85명이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2010학년도 학교선택권제 실시를 앞두고 지난해 10월 모의배정(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놓으며 자랑스레 밝힌 내용이다. 이 얘기는 지금도 ‘이론적으로’ 유효하다. 학생이 원하는 학교가 어디인지 분명히 알고 있을 때는 확실히 그렇다.

시교육청은 4월 22일부터 5월 3일까지 또 한 차례 시뮬레이션을 실시했다. 그런데 시뮬레이션을 실시할수록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은 깊어졌다. 중학교 3학년 담임교사를 맡고 있는 학부모마저 “어떤 학교를 써내야 할지 모르겠다”며 정보 부족을 호소할 정도였다.

시교육청도 홍보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나온 아이디어는 500쪽 가까운 ‘학교 선택 길라잡이’를 모든 학생에게 한 권씩 나눠주겠다는 것뿐이다. 학교별 기초 정보를 손쉽게 비교할 수 있는 ‘고교 정보 포털사이트’를 구축하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서열화 우려 때문에 일단 무산됐다. 결국 학생 학부모가 전화번호부 두께만 한 책을 펴 놓고 페이지를 넘겨가며 직접 정보를 캐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학부모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대학 진학률은 책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12만2000명이 넘는 서울 시내 중3 학생들에게 책을 한 권씩 주려면 인쇄비만 10억 원이 넘게 든다. 웹사이트 구축은 3000만∼4000만 원이면 충분하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학교 정보 공개 사이트 ‘학교 알리미’에 학생 학부모가 원하는 정보를 담았다면 이 사이트는 처음부터 필요도 없었다.

김한중 연세대 총장은 6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입시는 복잡한데 정보가 부족해 학부모들이 불안감을 해소하려고 사교육업체를 찾는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고교 입시에도 해당한다. 정보가 공개되지 않으니 사교육업체만 휘파람을 분다. 이번 시뮬레이션 결과 역시 비공개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학생 대부분이 집과 가까운 학교를 선택했다”는 말만 흘렸다. 답답한 얘기다. 집 앞에 있는 학교도 잘 모르는데 다른 지역 학교 정보를 어떻게 알겠는가.

헌법재판소는 5일 고교추첨제(초중등교육법시행령 84조)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렇다고 고교 평준화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학교선택권제는 분명 평준화에 질린 교육 수요자의 숨통을 터줄 수 있는 좋은 제도다. 그러나 그 출구가 제대로 된 길라잡이가 되려면 정보가 활짝 열려야 한다. 그래야 내년 고교 1학년생 85%가 ‘뺑뺑이’를 원망하지 않게 될 것이다.

황규인 교육생활부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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