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한국인이 이룬 張家界의 기적

  • 입력 2009년 4월 24일 03시 02분


1989년 1월 시행된 해외여행 자유화조치가 20년을 맞았다. 1989년 내국인 출국자 수 159만 명으로 출발해 2008년에는 1231만 명이 해외여행을 떠났다. 외국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과 실제 가서 겪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폭발적인 해외여행 붐 속에서 한국인의 사고방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다.

지난주 중국의 장자제(張家界)에 다녀왔다. 1992년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곳으로 3000여 개의 거대한 기암괴석들이 절경을 뽐내고 있었다. 장자제로 향하는 비행기는 한국 관광객들로 만석이었다. 장자제에 도착하니 곳곳의 한국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관광지 안내판에는 대개 그 나라 글씨와 함께 영어가 표기되지만 이곳에선 영어 대신 한글이 의젓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해외여행 자유화 20년이 남긴 것

관광버스가 들르는 곳마다 한국인으로 가득했다. 서양인 일본인은 눈에 띄지 않았다. 상인들은 ‘천원’ ‘싸다’ ‘아줌마’ 등 우리말을 제법 구사했다. 장자제 시는 재정의 80%를 관광수입으로 충당하는데 그중 70%를 한국인이 지불하고 있다. 장자제의 명성은 일본 미국 유럽에도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좋은 곳에 왜 한국인만 북적일까 궁금했다.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 여행객은 ‘최대 손님’이다. 중국에 입국하는 외국인 가운데 한국인 수는 2005년부터 1위를 지키고 있다. 중국에 많이 오는 만큼 관광지에서 한국인을 많이 보는 것이다. 일본 입국자 중에도 한국인이 1위다. 엔고(高)로 일본 여행이 위축됐던 지난해에도 212만 명의 한국인이 일본에 입국했다.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도 한국 여행객이 가장 많다.

해외에서 ‘1등 한국’은 또 있다. 미국 내 한국 유학생은 지난해 말 11만 명으로 3년째 1위다. 2위는 인도, 3위는 중국, 4위는 일본이다. 숫자를 단순 비교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인구 규모도 감안해야 한다. 중국 인구는 13억 명, 인도는 11억 명, 일본은 1억2700만 명이다. 덩치가 훨씬 큰 나라보다 유학생을 많이 보내고 있다.

이때쯤 ‘대한국민 만세’를 부르기엔 좀 조심스럽다. 반도(半島)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해외에 나가고픈 열망이 더 강한 이유도 있을 것이고, 부실한 교육여건으로 해외 유학을 택하는 현실도 마음에 걸린다. 만성화한 여행 및 유학비용 수지 적자를 보면 우리가 해외에서 너무 돈을 많이 쓰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하지만 한국인의 놀라운 대외(對外)지향성의 원류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는 쇄국에 가까운 상태로 해외로 가는 길이 닫혀 있었으나 고려 때만 해도 세계와 빈번하게 교류했다. 아랍 상인과도 거래하면서 중국 곳곳에 근거지를 확보했다. ‘코리아’는 이때 붙여진 이름이다. 신라는 전형적인 무역의 나라였으며 화려한 문화유산은 국제 교역을 통해 상당한 경제력을 갖췄음을 증명하고 있다. 백제는 인도까지 해상 통로를 갖고 있었고 중국의 요서(遼西) 지역을 경영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인의 유별난 대외지향성은 민족적 배경을 갖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해 본다.

못 말리는 對外지향성 활용해야

그동안 한국인이 해외에 나가 테러에 희생당하는 비극도 있었고 점잖지 못한 행동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살고 있는 답답한 여건 속에서 전통적으로 키워 왔던 ‘대륙지향성’과 ‘해양지향성’의 본능을 다시 확인한 것만으로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해외에 나가본 사람들은 외국에 문을 닫아거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몸으로 깨달았을 것이고 돈 벌 기회가 한국 밖에도 있음을 눈치 챈 사람들이 많았다. 다문화시대를 맞아 외국인에 대한 배타성이 문제 되고 있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가 외국인 며느리와 근로자에게 온정을 갖게 된 점은 큰 진전이었다. 해외여행을 통해 터득한 지혜를 슬기롭게 활용하는 일만 남았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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