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장훈]노무현은 가도… 포퓰리즘은 남아

  • 입력 2009년 4월 14일 03시 01분


노무현식 정치가 굉음을 내면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 2002년 광주 경선에서 화려하게 등장해 5년간 우리 정치를 이끌었던 노무현 모델의 도덕적 파산이 눈앞에 드러나고 있다. 노무현식 정치의 붕괴를 지켜보면서 보수 진영은 안도감과 더불어 은밀한 쾌재를 부를 것이다. 반면에 진보진영은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허탈감과 자괴감에 빠져 있다. 물론 이런 흐름은 눈앞에 다가온 재·보궐 선거와 이후의 정치일정에도 큰 파장을 가져올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씁쓸한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은 그가 상징했던 정치현상의 의미와 미래이다. 과연 정치인 노무현의 도덕적 파산이 정치 현상으로서의 ‘노무현 현상’까지도 완전히 종식시켰는가? 필자는 정치인 노무현은 잊혀지더라도 노무현 현상의 뿌리까지 사라지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2002년부터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노무현 현상은 ‘도덕의 정치’와 ‘포퓰리즘 정치’의 결합이었다. 이 가운데 노무현 식의 ‘도덕의 정치’는 최근의 금품수수 의혹과 더불어 도덕적 파산에 이르렀다. 노 전 대통령이 씨를 뿌린 ‘포퓰리즘 정치’의 경우는 얘기가 좀 달라진다. 강렬한 편가르기와 감성적 호소, 화려하지만 실현 불가능한 약속의 남발로 이어지는 포퓰리즘 정치의 토양은 여전히 건재하다. 두 가지의 구조적 요인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포퓰리즘의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부실한 정치-불안한 경제 먹고살아

첫째 요인은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경제 불안이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는 시기와 때맞춰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안정세를 보이지만 이것이 일시적인 봄바람이라는 점은 누구에게나 분명하다. 우리는 지난해 가을을 기점으로 경제혼란과 불확실성이라는 긴 터널의 입구에 막 들어섰을 뿐이다. 미국경제의 부실의 규모를 누구도 자신 있게 추정하기 어렵듯이 지금의 불안의 시대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누구도 속단할 수 없다.

만일 역사가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다면 지금의 혼란기는 20세기 전반의 전간기(戰間期·inter-war period)처럼 20년 가까이 이어질 수 있다. 미국 이후의 세계가 모습을 갖춰가는 데, 또 전 세계가 워싱턴 컨센서스 이후의 질서를 만드는 데 있어서 20년은 충분하게 긴 시간은 아니다. 포퓰리즘은 바로 이런 경제불안과 사회불안을 먹고 자란다. 페루의 후지모리, 아르헨티나의 페론이 보여준 바와 같이 경제불안이 지속될 때 시민들은 포퓰리즘의 달콤한 유혹에 기댄다(2002년 노무현 현상은 경제불안보다는 월드컵 열기와 민족주의에 기댄 것이었지만).

포퓰리즘이 우리 주변을 계속 배회하는 또 다른 근거는 제도권 정치의 무기력이다. 유권자는 지난해 선거에서 압도적 다수의석을 여당에 안겨줬지만 18대 국회가 유권자에게 되돌려준 것은 분열과 혼란, 무기력에 빠진 모습뿐이었다. 1년 동안 주요 법안이 거의 통과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시민들은 정치 엘리트의 깊은 분열을 본다. 또한 박연차 리스트에 여야, 신진 원로 구분이 없다는 현실에서 시민들은 정치엘리트의 뿌리 깊은 부패를 확인한다. 제도권 정치가 부실과 부패의 늪에서 헤맬 때 포퓰리즘은 쑥쑥 자란다. 제도정치권 바깥의 아마추어 정치가들이 경험의 부족을 참신함으로 포장하고 유권자에게 다가갈 것이다. 이들 아마추어는 근거 없는 장밋빛 약속을 쏟아내고 기성정치에 신물이 난 유권자는 이런 유혹에 흔들릴 수 있다. 숱한 역사적 사례가 보여주듯이 포퓰리즘은 과대포장, 과잉약속, 기대와 현실의 괴리라는 악순환 속에서 정치와 경제를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는다.

그렇다면 경제불안과 제도정치권의 무기력이라는 쌍두마차를 타고 제2, 제3의 노무현 현상은 반복될까? 우리가 두 가지의 브레이크를 갖고 있기는 하다. 하나는 학습의 효과이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여러 공과가 있었지만 하나의 귀중한 소득은 화려한 정치적 수사와 현실정치의 제약 사이의 어쩔 수 없는 거리에 대해서 좀 더 현실적인 인식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반미(反美) 좀 하면 어때?”라고 외치던 후보가 집권 1년차에 이라크 파병이라는 실용적 선택을 할 때부터 과잉약속의 거품은 꺼지기 시작했다. 정치언어와 정치현실 간의 긴장과 모순에 대한 냉정한 인식이 확산될 때 우리는 포퓰리즘이 내세우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수 있다.

냉정한 판단으로 유혹 떨쳐야

또 다른 희망은 세대와 문화의 변동이다. 노무현 현상의 주축을 이루었던 386세대는 새로운 비전을 내놓지 못한 채 점차 후퇴하고 이른바 포스트 민주화 세대가 성장하고 있다. 386세대가 도덕주의와 감성의 정치로 무장했다면 새로운 세대는 실용주의와 현실적 개인주의에 기울어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 정치에서 포퓰리즘의 뿌리는 크게 약화되지 않았으며 전환의 시대에 이를 제어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과제인 셈이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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