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권영민]세계인에게 ‘표준 한글’ 가르쳐야

  • 입력 2009년 4월 14일 03시 01분


한국어는 국제적 공용어가 아니다. 그러나 세계 각 지역에서 한국어 교육에 관심을 쏟는 대학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캐나다 영국의 중요 대학에서 이뤄지는 한국어 교육은 이미 높은 수준에 올라 있다. 동유럽권의 헝가리 폴란드 우크라이나에서는 한국어가 인기 있는 외국어의 하나로 손꼽힌다. 동남아 지역의 여러 대학도 한국어 교육에 열을 올린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지역의 이집트에서 한국어 교육이 시작됐고 남미 지역에서는 브라질의 상파울루대에서 한국어 강좌를 개설 운영한다. 특히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은 대학의 정식 강좌 이외에도 각종 한국어 교육 기관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이 꾸준히 늘어난다. 이에 따라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하는 사람도 해마다 급격하게 늘고 있다.

글자모양 제각각… 익히기 어려워

한국어의 국제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현상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한국어와 한글의 세계화를 통해 한국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이해를 더욱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먼저 한국어와 한글 사용에서 보편적이고도 체계적인 언어와 문자로서의 규범에 벗어난 점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언어와 문자에 일정한 기준이 없다면 이를 국제적 언어라고 할 수는 없다. 한글은 가장 체계적이고도 과학적인 문자로 손꼽히지만 글자 모양에 표준형이 없다. 그러므로 처음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은 글자의 모양을 눈에 익히기가 쉽지 않다. 한글 자모의 표준형을 지정해야만 효율적인 언어 문자 교육이 가능해진다.

한글 맞춤법이나 국어 표준어의 규정에 문제가 없는지 꾸준히 연구 검토해야 하고 외래어 표기법이나 로마자 표기법도 외국인에게도 신뢰를 받도록 정비해야 한다. 한국어와 한글의 사용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언어 문자의 규범이 무너지는 점도 바로잡아야 한다. 세계 각지에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인터넷 같은 새로운 매체에 등장하는 한국어의 언어 규범 파괴 현상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규범에서 벗어난 말과 글이 통용되는 언어를 세계어라고 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어의 세계화를 더욱 효율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방법을 새롭게 개발해야 하고 교육의 목적에 맞도록 교재 내용을 다양하게 꾸미는 일도 필요하다. 한국어의 세계화를 위해 일방적으로 교재를 만들어 외국으로 내보내고 교사를 파견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러한 일방적 지원방식으로 한국어 교육이 발전 확대되지는 않는다. 세계 각 지역의 특성과 환경에 따라 자생적으로 이뤄지는 교육 방식과 교육 내용에 맞춰 필요한 요소를 지원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다양한 한국어 교재를 개발하고 교육 방법을 체계화하지 않으면 교육 자체가 부실해지기 쉽다.

나라 특성에 맞는 교재개발 시급

외국인에 대한 한국어 교육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한국어 습득 내용과 수준을 제대로 측정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행과 같은 단계별 평가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종합적인 언어 능력 평가가 가능하도록 다양한 과학적인 평가 도구를 개발하고 이를 확대하는 일이 필요하다. 여기에 한국 정부가 더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어는 이제 한국 민족만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다. 한국어는 수많은 외국인이 배우고 있는 ‘세계어’의 하나다. 한국인은 한국어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가지고 외국인이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도록 도와야 한다. 한국문화의 세계화는 바로 한국어의 세계화에 달려 있다.

권영민 서울대 교수 한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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