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연차 ‘세무조사 무마 로비’ 수사는 그리도 힘든가

  • 입력 2009년 4월 9일 03시 01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전되면서 노무현 정권의 도덕적 파탄이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부부를 비롯한 가족과 친족 측근으로 수사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정권 관련 비리에 대한 검찰의 수사 의지는 단호해 보인다. 그런데 지난해 7∼11월 국세청의 태광실업 세무조사 무마를 위한 로비 의혹 수사는 왜 제자리걸음인지 의아하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 씨 및 현 정권과 가까운 인사들을 동원해 현 정권 실세들을 상대로 세무조사를 중단시키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금까지 구속된 사람은 박 회장에게서 2억 원을 받은 추부길 전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작년 2∼6월 재임) 한 명뿐이다.

추 씨는 검찰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에게 전화로 박 회장에 대한 부탁을 했으나 거절당했다고 진술했다. 추 씨는 이 대통령의 측근 의원에게도 “(대통령) 패밀리는 서로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노건평 씨의 청탁을 전달했다. 이 의원은 “맹세코 전화를 받거나 만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측근 의원도 “부탁은 받았지만 그냥 흘려들었다”고 해명했다. 당사자들이 부인한 것으로 모든 의혹이 해소됐다고 보긴 어렵다.

박 회장의 로비와 관련해 의혹이 제기된 사람 중에는 2003년 동생을 통해 박 회장의 돈 수억 원을 빌린 이종찬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작년 2∼8월 재임)과 이 대통령의 대학동기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도 있다. 세무조사 무마 로비의 목표였을 한상률 전 국세청장은 검찰이 박 회장의 정관계 로비를 본격 수사하기 직전인 지난달 15일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한 전 청장은 국세청의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총지휘했고 인사 청탁용 그림상납 의혹으로 올 1월 물러났다.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 수사는 한 전 청장을 조사하지 않으면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그가 스스로 해외도피를 결정했거나 사건 관련자들이 피신을 종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검찰이 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의지가 있다면 한 전 청장을 귀국시키고 의혹이 제기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검찰이 죽은 정권의 비리는 샅샅이 파헤치면서 살아 있는 정권의 비리는 적당히 덮고 넘어가려 했다가는 특별검사 같은 치욕적인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검찰은 현 집권세력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도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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