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구하는 잠수정 “수심 500m도 OK”

  • 입력 2009년 3월 31일 02시 54분


“조난 잠수함 승조원 구출”

수심 깊어지자 앞이 캄캄

실내 좁아 더 고통스러워

작년 500m 잠항기록 세워

■ 해군 최신형 심해잠수구조정 훈련 첫 동승기

《26일 낮 경남 진해시 앞 3마일(5.4km) 해상. 해군 잠수함구조함인 청해진함(4200t)이 대형 기중기로 배에 실려 있던 심해잠수구조정(DSRV)을 들어 천천히 바다 위로 내려놓았다. 작고 세련된 DSRV의 외형은 영화에 나오는 우주선처럼 생겼다. 물에 반쯤 잠긴 DSRV의 조종석 유리창에 파도가 높게 일렁거렸고 선체가 흔들리자 약한 뱃멀미가 느껴졌다. 각종 계기판과 장비 점검을 끝낸 황태정 상사(38)가 “모든 밸브 차단 완료, 잠항 시작”이라고 외친 뒤 컴퓨터 게임에 사용하는 조이스틱처럼 생긴 조종간을 움직이자 DSRV는 ‘웅∼’ 하는 추진음을 내며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5m, 10m, 15m…’, 부조종사인 반석동 준위는 잠항 수심을 점검하며 청해진함과 수중 통신으로 훈련 상황을 알렸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투과되는 햇빛이 줄면서 주위가 어두워졌고 뿌연 부유물로 가득한 바닷속은 한치 앞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조종실과 승조원 대기실로 이뤄진 DSRV 내부의 높이는 1m도 채 안 돼 제대로 앉기조차 힘들었다. 수십 개의 밸브와 조종 장비, 산소공급 장치 등으로 가득 찬 내부를 이동하려면 통로를 기어 다녀야 했다.

DSRV 조종사들은 이처럼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깊은 바다를 몇 시간씩 탐색해 조난 잠수함을 찾아내 승조원들을 구출해야 한다. 태양빛도 없고 압력도 육상의 수십 배에 달하는 심해를 항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반 준위는 “수심 200m 이하는 수온이 1도 안팎이지만 DSRV 내부는 난방이 안 돼 덧신과 방한복을 입고 추위를 견뎌야 한다”고 말했다.

잠시 뒤 파고와 풍속이 거세지자 귀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DSRV는 곧 수면 위로 부상했지만 거친 파도와 조류로 예인 작업이 늦어져 예정보다 1시간 늦게 청해진함으로 귀환했다. 비록 잠항 수심은 수십 m에 불과했지만 DSRV의 성능을 확인하고 조종사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데는 충분했다.

귀환 후에야 비로소 반 준위는 동승했던 기자에게 “민간인으로서 DSRV에 처음 탑승한 것을 축하한다”며 악수를 건넸다. DSRV 조종사들은 동해의 심해에서 모의표적이나 실제 잠수함을 대상으로 탐색과 결합, 이탈 훈련을 연중 여러 차례 실시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날 동승한 DSRV는 영국제 최신 기종. 1996년 구형 DSRV를 도입해 운영해오다 지난해 말 180여 억 원을 들여 새로 들여왔다. 신형 DSRV는 최대 임무시간과 운항속도 등 성능 면에서 구형 기종을 크게 앞선다. 특히 최대 작전수심이 구형 기종보다 43m 깊은 500m이고, 1회 구조 인원도 16명(구형 기종은 10명)으로 1초가 급한 조난 승조원들을 더 빠르고 안전하게 구조할 수 있다. 실제로 신형 DSRV는 지난해 12월 초 해군에 인도되기 전 최종 성능점검을 위해 동해에서 수심 500m까지 잠항하는 데 성공했다. 해군 관계자는 “군과 민간을 통틀어 국내 최고 잠항기록을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DSRV가 임무나 훈련 도중 좌초하면 어떻게 될까. 수심 300m까지는 해군 심해잠수사(SSU) 대원들이 특수 잠수장비를 착용하고 생명선으로 산소와 헬륨이 섞인 혼합기체를 공급받으며 구조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깊은 곳이라면 방법이 없다.

이렇게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해군 내 DSRV 조종사는 13명에 불과하다. 조종사는 중사급 이상 SSU 대원들을 대상으로 모집하지만 지원자가 적다. 청해진함 함장인 장홍식 대령은 “앞으로 잠수함 전력이 증강됨에 따라 유사시 구조 임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잠수함구조함과 DSRV 장비, 조종사의 보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해=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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