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종호]입학사정관제, 거북처럼 한걸음씩

  • 입력 2009년 3월 30일 02시 59분


교육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일까? 대학입시가 1등을 차지할 것 같다. 그 다음은 무엇일까? 사교육이 아닐까 싶다. 사교육도 대학입시와 관련된 것임을 감안하면 최근 논의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도입 확대 전에 철저한 준비를

이런 사회적 관심은 두 가지 도전적 질문을 우리 사회에 제기한다. 과연 우리는 학생선발에 있어 점수라는 객관적 ‘신화지표’보다 학습이력과 잠재력이라는 ‘성장지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우리 대학들은 공정성과 투명성을 가지고 자율적인 학생선발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 두 질문에 우리 스스로가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면 토끼와 거북의 경주에서처럼 한 걸음씩 신중하게 입학사정관제 경주를 시작해야 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자료에 따르면 2008년 현재 10명 이상의 전문성을 갖춘 입학사정관을 채용하고 있는 대학은 서울대 건국대 경희대 정도라 한다. 이 상황에서 여러 사립대학이 2010학년도부터 입학사정관제에 의한 신입생 선발을 정원의 20% 이상으로 하겠다고 발표하고 있으니 국민들이 갖는 우려가 기우가 아닐 것 같아 잠이 안 온다. 왜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입학사정관제 도입을 확대하려고 하는가? 교육과학기술부가 입학사정관제 지원을 위해 당근인 236억 원을 대학별로 차등 지원한다는데, 입학사정관제에 의한 선발인원이 지원기준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까?

당근이 아무리 좋지만 대학이 토끼처럼 자만해서는 안 된다. 운동을 할 때에도 준비운동 없이 본 운동을 바로 하면 다친다. 혹시 일시적으로 괜찮다고 느낄지 모르나 시간이 지나면 충격이 누적되어 그 대가는 클 수밖에 없다.

대학들이 현재 입학사정관을 채용 중에 있으니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변명해서는 안 된다. 입학사정관이 몇 명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들의 전문성과 준비 정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입학사정관이 전문성을 계발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갖도록 해야 하고 대학별로 충분한 입학사정관제 운영 경험을 누적한 후 경주를 시작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 대교협이 중심이 되어 입학사정관 협의체를 만든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입학사정관제 운영에 있어 오랜 역사를 가진 미국입학사정관협의회(NACAC)처럼 입학사정관의 자격연수 및 전문성 향상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각 대학은 입학사정관제 운영 시 지켜야 할 윤리 강령도 반드시 제정해야 하며 입학사정관제 경주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대학과 고등학교 간의 긴밀한 연계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입학사정관제에 의한 입학 결정의 중요한 근거 중 하나가 고등학교 생활 및 학업이기에 두 기관 간의 신뢰관계와 정보공유체제가 선행되는 것은 달리기 경주를 위한 코스를 마련하는 일이다. 경주 코스를 마련하지 않고 경주를 시작하는 우를 범해서는 절대 안 된다.

대학-고교 정보공유체제 갖춰야

우리 상황에 맞는 경주 규칙을 마련하는 일도 입학사정관제의 성공적 운용에 필요하다. 미국처럼 입학사정관이 전적으로 입학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공부하고자 하는 학문영역의 교수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해 이전의 경주기록을 넘어 앞으로의 기록경신 가능성을 심층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입학사정관제 운영에 있어 절대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 없다! 우리 상황에 맞는 경주와 경주에서의 승리를 위해 거북처럼 성실하게 한 발짝씩 목표를 향해 걸어 나가야 한다.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