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의약분업 효과 날려버린 ‘항생제 천국’

  • 입력 2009년 3월 26일 02시 58분


사상 최초의 의사 파업과 20조 원의 비용을 들이며 2000년에 도입한 의약분업의 가장 큰 목적은 항생제 처방률 저하와 약제비 감소였다. 실제로 2002년 75.5%로 세계 최고였던 감기 환자에 대한 동네 의원의 항생제 처방률은 2004년 66.4%에서 2006년 54.9%까지 떨어져 의약분업의 효과가 나타나는 듯했다. 하지만 그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발표에 따르면 2008년 동네 의원의 항생제 처방률은 57.3%로 2년 연속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항생제 남용이 원상복귀하고 있는 것이다.

감기는 바이러스가 원인인 만큼 박테리아를 죽이는 항생제가 듣지 않는다. 감기 환자에게 항생제를 쓰는 것은 감기가 박테리아 질환인 폐렴이나 기관지염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을 때 예방 차원에서 투여하는 경우다. 그런데도 항생제 사용이 슬금슬금 다시 늘기 시작한 이유는 의사와 환자 모두 항생제에 대한 경각심이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페니실린을 비롯한 여러 항생제의 발견으로 전 세계 수많은 인명을 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부작용도 만만찮다. 오·남용할 경우 내성(耐性)이 생겨 점점 고단위 항생제를 써야 하고 종국에는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출현할 수 있다. 감기는 ‘약 먹으면 일주일 만에, 안 먹으면 7일 만에 낫는다’는 말도 있다. 감기를 단박에 치료하려다 정작 큰 질병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슈퍼박테리아가 등장해 이런 우려가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항생제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항생제 주사를 한 방 맞아야 제대로 치료받은 것으로 생각하는 환자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치료의 주도권을 쥔 의사들의 각성이 중요하다. 이번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발표에서 보듯 항생제 처방률은 지역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인다.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지역의 동네 의원들이 공동으로 노력할 경우 항생제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특히 어린이일수록 항생제 부작용이 크므로 부모들은 항생제 처방률이 낮은 병원을 이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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