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양섭]유럽식 사회주의 닮아가는 미국

  • 입력 2009년 3월 6일 02시 59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경제교사 로런스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의 변신을 두고 말들이 많다. 그는 최연소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를 거쳐 재무장관과 하버드대 총장을 지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전문가. 부모가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교수였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얼슨과 케네스 애로가 각각 그의 삼촌과 외삼촌이다.

서머스 위원장은 자유시장경제의 옹호자였으나 최근 개입론자로 바뀌었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대가 밀턴 프리드먼 시카고대 교수가 2006년 숨졌을 때 “그는 자유시장의 중요성을 확신시켰다”고 헌사한 이가 그다. 하지만 최근 구제금융법안이나 경기부양안 등 정부의 개입을 강화한 정책들을 입안했다. 호사가들은 “그가 경제철학을 바꿨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그는 1930년대 대공황 때 뉴딜정책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케인스가 한 말로 대신했다. “시대와 환경이 변하면 사람도 정책도 변해야 한다.”

그의 변신이 문제되지 않을 만큼 미국의 경제상황이 다급하게 돌아가고 있다. 금융위기는 이제 실물위기로 넘어갔다.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치닫고 실업자는 500만 명을 넘어섰다. 실제로는 650만 명도 넘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가계는 지갑을 닫고, GM과 크라이슬러의 판매량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이대로 가면 전체 실업률이 10%를 넘어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이렇다 보니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와 원자바오 중국 총리에게서 “미국식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끝났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들 국가도 요즘 발등의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은 상황이 다급해지자 시장경제의 꽃이랄 수 있는 시중은행까지 국유화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심지어 보수주의자들은 오바마 정부를 사회주의 정부라고 낙인찍는다. 그럴 만도 하다. 부유층에 대한 증세, 소외계층에 대한 의료 복지대책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과 규제완화를 전통으로 하는 미국식이라기보다는 사회주의 전통이 강한 유럽식과 닮았다. 뉴스위크 통계도 미국의 변화를 뒷받침한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정부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10년 전에는 유럽이 48.2%였다면 미국이 34.3%였다. 그러나 내년엔 유럽이 47.1%, 미국이 39.9%로 격차가 크게 줄어든다. 미국 정부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경제를 살려 보려 자본주의 핵심까지 손을 대보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한쪽에선 구제금융을 받은 회사의 중역들이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노조는 구조조정은 안 된다고 버틴다. 이 와중에 오바마 정부는 전통적 지지기반을 흔들지 않고 파고를 넘으려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검토 시사도 결국 자동차 노조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미국이 보호주의로 가는 게 아닌가 우려한다. 시장도 이런 사인들에 부정적이다. 다우지수 7,000 선이 무너진 것도 시장이 신뢰를 못해서다.

문제는 우리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로서는 미국 경제의 L자 회복은 치명적이다. 미국은 다급하게 움직이는데 우리는 너무 한가하다. “외환위기 때보다 상황은 더 심각한데도 침착하다 못해 안이한 것 같아 걱정”이라는 경제계 인사의 말이 귓가를 때린다.

윤양섭 국제부장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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