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 수첩]미끌 미끌 WBC 공인구…적응하는 것도 실력이다

  • 입력 2009년 3월 4일 02시 54분


미국프로농구(NBA) 데이비드 스턴 커미셔너(67)는 ‘장수(長壽)’를 하고 있다. 1984년 커미셔너가 됐으니 올해로 26년째다. 메이저리그(MLB),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에 비해 2류 종목에 머물렀던 NBA를 오늘날 글로벌 스포츠로 만든 주역은 누가 뭐래도 스턴 커미셔너다. 1984년 NBA는 23개 팀이었다. 현재는 30개 팀으로 늘어났다. 이런 게 커미셔너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스턴 커미셔너는 매우 보수적인 탓에 ‘나를 따르라’는 식의 독선이 두드러진다. 선수들의 힙합 스타일 복장에 불만을 드러내 3년 전 ‘드레스 코드’를 강화했다. 흑인들을 겨냥한 인종 차별이라며 목청을 높인 선수들도 있었으나 이내 수그러들었다.

2006∼2007시즌에 들어가기 전 스턴 커미셔너는 종전에 사용했던 농구공을 바꿨다. NBA 공인구는 스포츠 용품사 ‘스팔딩’에서 제작하는데 종전 가죽공에서 초미세 합성 섬유인 ‘마이크로파이버’로 교체한 것이다. 스턴 커미셔너는 새로운 공은 그립 감촉이 좋아 종전 가죽공보다 경기력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시범경기를 거쳐 정규 시즌에 마이크로파이버 공인구를 사용한 선수들의 반응은 일제히 ‘노’였다. 미끄럽다는 이유였다. 스턴 커미셔너는 처음에는 “아직 적응이 안 됐으니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선수들의 반발을 묵살했다. 하지만 르브론 제임스를 비롯한 슈퍼스타들이 새 공인구는 문제가 많다며 줄곧 거부감을 드러내자 2개월 정도 사용하다가 결국 가죽공으로 환원시켰다.

둘레 30인치의 농구공도 가죽공에서 마이크로파이버로 교체했을 때 선수들이 촉감 때문에 반발이 심했는데 지름 3인치 안팎에 불과한 야구공은 오죽할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아시아권 선수들의 롤링사 공인구 불만에 충분히 동감한다.

사실 처음에 WBC가 제공한 공인구는 더 미끄러웠다. 미국에서는 경기 전 볼에 특수 진흙을 발라 미끄러움을 방지한다. ‘슈거 샌드’로 통하는 이 진흙은 뉴저지 주에서 나온다. 한국 대표 팀도 나중에 연습경기 전에 진흙을 발라 실전에 대비했다. 그렇더라도 수십 년 동안 국내 볼에 익숙한 선수들에게는 WBC 공인구가 여전히 미끄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막을 눈앞에 두고 여전히 공인구의 미끄러움을 거론하면 곤란하다. 나쁜 결과가 나왔을 때는 모두 공인구 탓이 된다. 공인구에 빨리 적응하는 것도 실력이다.

로스앤젤레스=문상열 moonsytexas@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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