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현지]진짜 ‘명품병원’이 되려면…

  • 입력 2009년 3월 3일 02시 58분


무료 주차대행(발레파킹)을 해주는 병원이 생겼다. 2년간 260억 원을 들여 리모델링을 끝내고 1일 새로 개원한 ‘강남세브란스병원(옛 영동세브란스병원)’이 내놓은 서비스다.

다급한 환자나 가족이 병원에 갔을 때 가장 짜증나는 일 중 하나가 주차 전쟁 아닌가.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해주는 발레파킹을, 그것도 공짜로 해준다니 환영할 만한 일이다.

강남세브란스는 ‘고객만족 명품병원’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병원에 들어설 때부터 나갈 때까지 내원객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겠다는 선언도 했다.

최근 대형병원들 사이에 이런 ‘명품 서비스’ 경쟁이 한창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허전함을 감출 수 없다. 환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명품 병원은 의사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꼼꼼하게 환자를 진찰해 주는 병원이기 때문이다.

대형 대학병원 의사들의 진료 시간은 3분을 넘지 않는다. 오전 오후 3시간씩 진료한다고 봤을 때 환자 1명당 3분이면 하루 120명을 볼 수 있다. 반면 10분이면 환자 수가 36명으로 줄어든다.

한 대학 총장이 3분 진료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의사가 웃으면서 “3인분을 끊어 오셔야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얘기도 있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농담을 했을까 싶다.

물론 환자가 대형병원부터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인데 집 근처 작은 병원보다 좋은 시설과 저명한 의사들이 있는 대형병원에 가고 싶은 환자를 탓할 수만은 없다. 통증이 심해도 새벽에 KTX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만 안심이 되는 게 환자의 심정이다.

정부의 해외환자 유치 및 의료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정책까지 맞물려 병원들의 명품 경쟁이 가열되고 있지만 환자 1인당 진료 시간을 대폭 늘렸다는 병원은 별로 보지 못했다.

병원들은 “턱없이 낮은 의료 수가 때문에 환자를 많이 봐야만 수지를 맞출 수 있는 현실은 무시한 채 의사들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말라”고 주장한다. 틀린 말도 아니다. 의료전달체계의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병원은 붐비고, 진료 시간도 짧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는 손도 못 대고 발레파킹으로 명품을 대신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의료 현실이다.

진정한 명품 병원은 환자를 만족시켜 주는 병원이다. 환자가 원하는 것은 친절하게 자신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의사다.

김현지 교육생활부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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