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무성]G20 외교, 핀란드서 배우자

  • 입력 2009년 2월 26일 02시 59분


이명박 정부가 1년간 펼친 외교정책은 명암이 교차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같이 성급한 대외정책 때문에 국론분열을 초래한 때도 있었지만, 적극적 외교활동을 펼친 때도 있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 주변 4강과 16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하면서 이들과의 관계를 한층 격상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 워싱턴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한국의 역할은 주목할 만하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공동대처하기 위한 금융지원 확대 및 국제금융체제 개선 논의에 있어 신흥국의 참여를 주도적으로 제안했다. 그 결과 G20의 논의에서 강대국의 논리보다는 국제 사회 전체의 이익을 반영할 기틀을 마련했다. 또 한국은 영국 브라질과 함께 차기 G20 정상회담 의장단을 맡게 됐다. 이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과거 핀란드의 사례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EU)은 회원국이 개별적으로 이행하였던 외교안보정책을 공동으로 수행하기로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 합의했다. 회원국이 6개월마다 돌아가면서 순회 의장국을 맡고, 이 의장국이 국제사회에서 EU를 대표한다. 1999년 핀란드가 EU의 의장국을 맡았을 때 인구 502만여 명의 소국이 개별 회원국의 국가이익과 EU 전체의 이익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세간의 관심이 모아졌다.

핀란드는 북방지역발의(Northern Dimension Initiative)를 통해 탈냉전 이후 EU와 러시아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에 러시아와의 원만한 관계는 자신의 국익에 부합하면서 EU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특히 발칸반도의 안정화는 EU 전체의 이익이었다. EU의 외교안보정책 의사결정과정에서 영국 프랑스와 같은 강대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핀란드의 발의는 상대적으로 등한시되었던 약소국의 이익을 반영하는 계기가 됐다. 그 결과 EU의 공동외교안보정책은 회원국의 개별 이익과 유럽연합의 전체 이익을 조율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또 핀란드의 발의는 외교안보정책에서 유사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던 발칸 지역 국가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됐고, 이들 국가도 EU 가입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핀란드는 약소국(small states)이지만 현명한 국가(smart states)라는 닉네임을 가지게 됐다.

한국은 강대국처럼 의제를 주도적으로 채택하는 역할을 할 순 없지만, 핀란드의 사례에서처럼 문제를 인식하고 의제를 개발하는 의제 제안자(agenda setter)역할은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다. G20 정상회담은 이런 역할을 보여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첫째, 한국은 G20 정상회담을 주재할 때 사전에 참여 국가들과 긴밀한 상호조율을 통해 참여 국가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의제를 채택해야 한다. 둘째, 회담에 참여하는 선진국과 신흥국 간 이해관계를 공정하게 조정하는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를 통해 회원국 간 공조를 강화해 줄 수 있는 네트워크 형성도 도모해야 한다. 이 경우 현재 국제사회가 겪고 있는 난관을 돌파하는 데 일조하는 현명한 국가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대외적 분발은 경제위기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국민에게 다시 한 번 뛸 수 있는 자긍심도 회복시켜 줄 것이다.

이무성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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