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성철]국민 선택권 넓혀줘야 ‘좋은 정부’

  • 입력 2009년 2월 23일 02시 54분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 컬럼비아대 총장을 할 때였다. 총장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둥글게 생긴 잔디밭의 중간이 누렇게 죽어 있곤 했다. 담당자를 불러 왜 중간이 저렇게 자꾸 죽느냐고 물었더니 “학생들이 못 지나가게 해도 자꾸 거기로 지나가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담당자 말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사람아, 그러면 거기에 길을 내어야 하는 것이야. 사람들이 원하는 길이 있으면 그 길을 열어 주는 것이 좋은 세상이야.”

그렇다. 좋은 세상, 좋은 정부란 국민이 원하는 길을 최대한 열어 주는 세상, 그런 정부이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우리 국민은 너무나 많은 선택을 빼앗기며 살고 있다. 요즈음 논란이 되는 자립형 사립고 문제, 정치의 싸움판화, 의료 서비스의 산업화와 세계화가 사실은 다 국민의 ‘빼앗긴 선택’의 문제이다. 따지고 보면 이 선택의 박탈은 박정희 대통령이 남긴 유산이다.

첫째가 교육이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나는 경쟁하기 싫어. 게임이나 하고 축구나 하다 뺑뺑이로 중학교, 고등학교 가고 싶어”라고 하는 학생도 많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런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반대로 “나는 경쟁하고 싶어. 그래서 최고를 향해 한번 도전하고 싶어”라고 하는 학생도 있다. 그런 학생에게는 그런 길을 열어 주는 정부가 좋은 정부다. 획일성은 국민의 한쪽을 위해 다른 쪽을 비참하게 만드는 치명적 문제가 있다. 교육열이 주는 부담이 너무나 컸으므로 당시에는 획일성이라는 해결책에 사회적으로 합의하긴 했지만 지금 우리는 비싼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둘째는 의료이다. 세상에는 상황에 따라 비싼 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싼 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어머니를 몇억 원을 들여서라도 꼭 최고의 의사에게서 치료받게 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어떨 때는 아무 데나 가서 싸게 치료받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좋은 세상이란 비싼 것도 있고 싼 것도 있어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30, 40년 동안 많은 가난한 사람이 이 획일성의 혜택을 봤지만 외과의사의 부족 등 의료 서비스 질의 전반적인 저하가 야기하는 대가를 곳곳에서 치르는 것도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정치가 이 지경인 것도 궁극적으로는 빼앗긴 선택의 문제이다. 조국 근대화의 열망에 불타던 박정희 대통령은 근대화를 향한 시책에 대한 정치인의 시비를 차단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채택한 제도가 전 세계에 유례없는 대통령제하에서의 당론이다. 본래 대통령제하에서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하나의 헌법기관으로서 지역 구민의 의사와 본인의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하게 되어 있는데 이들이 어느 날 말 잘 듣는 ‘쫄병’으로 전락해버렸다.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한 상태에서 국회의원은 당에서 쫓겨나면 자동적으로 국회의원직도 상실하니 정당은 자연 군대식 명령체계로 굳어졌다. 그 결과 국민은 자신의 의견을 대변할 의원을 선출하지 못하고 당을 선출할 수밖에 없었다. 당은 몇몇 사람에 의해 지배되니 국민의 실질적인 선택권은 사실상 유실됐다. 당의 일사불란함은 단기적으로 정치의 낭비를 줄이고 초고속 성장에 기여한 점이 있지만 우리는 오늘날 패싸움 정치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박 대통령은 풍요의 시대를 연 걸출한 지도자였다. 그렇게 시작된 풍요를 통해 우리의 시대도 이제 확연히 달라졌다. 정부의 가장 큰 역할이 먹고사는 기본을 제공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정말 좋은 정부, 사람을 사람답게 살도록 해주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그런 정부는 국민에게 그들이 원하는 다양한 선택을 실현시켜 주는 정부이다. 궁극적으로 나라가 국민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다양한 선택이다.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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