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권력 금단(禁斷)현상에 사로잡힌 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와 세계적 경제위기가 돌출해 어려움을 가중시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정 난맥의 적잖은 부분은 정부와 여당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회 사무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예고한 법안 625건 중 기한을 지킨 법안은 173건(27.7%)에 불과했다. 정부는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할 법안이 200건이나 된다면서도 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소홀했다. 미디어 관계법은 12월 4일에야 의원입법으로 발의됐다. 이 같은 무소신과 늑장 대응으로 야당의 저지 공세에 빌미를 제공했다.
한나라당도 171석에 걸맞은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소수 야당에 무기력하게 끌려다녔다. 지금도 쟁점 법안이 국회 상임위에 상정조차 안 되고 있는데도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며 뛰어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경제 살리기 법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마음을 하나로 모아도 모자랄 판에 당내 의견은 계파에 따라 제각각이다. 입으로만 ‘국민과의 소통’을 외칠 뿐 수수방관하거나, 자기 세력 강화에만 골몰하는 세력도 있다. 다음 달 초로 알려진 이재오 전 의원의 귀국을 앞두고 ‘친이’ ‘친박’ 갈등이 다시 고조되는 듯한 분위기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15일부터 한 달 동안 한나라당을 비롯해 자신의 팬클럽 회원이나 대선 외곽조직에서 뛰었던 인사들을 줄줄이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 하지만 야당 인사는 물론 정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불러 의견을 듣고 설득하는 자리는 없었다.
이 정부는 각종 경제지표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실업대란이 사회통합을 걱정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에서 임기 2년차를 맞는다. 정권의 분열상과 무기력증이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경제위기 극복은 기대하기 힘들고 국민의 절망도 깊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