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기자의 킥 오프]징크스는 없다, 허상이 있을 뿐

  • 입력 2009년 2월 13일 02시 59분


고대 그리스에는 마술에 사용된 ‘징크스 토킬라’라는 새가 있었다. 목을 180도 회전하고 뱀처럼 ‘쉿’ 소리를 잘 냈다.

사람들은 그 새를 보면 기분이 상했다. 결국 불길함의 상징처럼 생각하게 됐다. 요즘 우리가 흔히 쓰는 징크스(Jinx)란 용어가 탄생한 배경이다.

스포츠에서 징크스는 특정한 상황이나 조건이 되면 꼭 나쁜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을 말한다.

한국과 이란의 악연이 그렇다. 한국은 11일 이란과의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1974년부터 테헤란 원정 무승(2무 2패)의 징크스를 이어 갔다.

이란은 이날을 포함해 해발 1273m의 고지대인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2004년부터 열린 31번의 국가대표 매치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가히 ‘원정팀의 지옥’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는 객관적인 기록일 뿐이다. 특별히 한국이 이기지 못하는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과거에 있었던 한두 번의 실패를 근거로 앞으로의 일을 좋지 않은 결과로 지레짐작하는 게 징크스의 심리학이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1일 사우디아라비아를 2-0으로 꺾고 19년 원정 무승의 징크스를 털어냈다. 과거를 의식하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면 징크스는 끼어들 틈이 없다.

징크스는 과거의 좋은 기억을 되살리면 긍정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한국이 중국을 상대로는 16승 11무로 한 번도 패하지 않은 게 그렇다.

한국의 이란에 대한 ‘원정 무승 징크스’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김병준(스포츠심리학) 인하대 교수는 “한국은 원정의 부담을 딛고 최선의 결과를 얻었다. 선수들도 경기를 잘했다. 이를 안 좋은 징크스로 연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원정 무승은 수많은 경기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현지의 선수들은 “하면 된다”는 분위기로 축구를 즐겼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이 원정 무승이란 ‘징크스’에 얽매여 있는 동안 오히려 선수들은 이란이라는 ‘현실’과 맞서 싸운 것이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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