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권희]마린大橋는 번지점프에 좋다

  • 입력 2009년 2월 10일 02시 59분


동해 저편 일본 시마네 현의 작은 항구도시 하마다의 마린(해양)대교 건설엔 7000만 달러가 들어갔다. 요즘 환율로 1000억 원에 가까운 돈이다. 이미 다리로 연결돼 있는 조그만 세토가 섬과 하마다 시를 더 큰 다리로 잇기로 한 것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계획을 통해 ‘잃어버린 10년’의 저성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1999년 완공된 305m 길이의 이 다리는 요즘 차량 통행이 뜸하다. 현장을 찾은 뉴욕타임스 기자는 지난주 기사에서 “번지점프하기에 좋을 것 같다”는 주민의 농담을 전했다. 인구 6만1000명의 하마다 시에는 고속도로와 고가도로, 아동미술관, 스키리조트를 포함해 갖가지 공공시설물도 들어섰다. 그나마 제 구실을 하는 건 대학과 교도소, 수족관 정도라고 한다.

이 도시만이 아니다. 1991년부터 작년 9월까지 일본 구석구석에는 건설 관련 공공투자비 6조3000억 달러(약 8700조 원)가 뿌려졌다. 그렇지만 일본을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시킨 것은 SOC투자가 아니라 금융 부실의 처리, 그리고 중국과 미국으로의 수출 호조였다.

일본의 전례는 글로벌 경기침체 탈출을 위해 SOC투자 등 경기부양책 추진에 부산한 각국에 경종을 울린다. 이를 연구한 이코노미스트들은 “SOC투자는 공사를 벌일 때만 약간의 고용을 창출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니 경기를 살린다는 구실로 도로, 다리, 건물 등에 무턱대고 돈을 뿌리지 말고 지식기반 서비스 등 미래에 유용한 공공사업에 투자하라는 얘기다.

여러 나라가 글로벌 경기침체에서 하루라도 일찍 벗어나기 위해 각종 부양책을 동원하고 있다. 일본의 실패에서 배우자면, 아무리 급해도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보고 공사장 일자리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도 점검해보라는 것이다. 혈세를 다루는 정부가 ‘어디든 재정 지원을 하면 일자리를 만들고 경기효과도 생긴다’고 주장한다면 무책임하다.

미국의 경우 시, 기업단체 등이 경기부양 예산을 노리고 전문 로비스트까지 고용하는 판국이어서 ‘쓸모없는 SOC투자’가 논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상하원은 8000억 달러 가량의 경기부양 단일안을 곧 마련할 예정이라지만 일부 의원은 “부양책의 3분의 1만이 효과를 낼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재정을 투입해 성장률 하락폭을 줄이고 경기회복을 앞당기겠다고 한다. 경기부양 예산은 ‘빨리’ 그리고 ‘잘’ 집행해야만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SOC투자 대상 선정 등 과정과 내용이 중요하다. 번지점프에나 좋을 마린대교나 고추 말리기에나 좋은 지방공항을 추진해선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1월 말 “성장률 수치에 집착하지 말고 치밀하게 준비해서 대응하라”고 비서실에 지시한 건 ‘목표보다 과정과 내용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런데 며칠 후 그는 “내년엔 4.2% 성장한다고 국제통화기금이 전망했다”고 전해 스스로 분위기를 깨버렸다. 이 대통령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경기가 아직 바닥에 닿지도 않았는데 수시로 달라질 수 있는 국제기구의 내년 전망치에서 국민이 희망을 찾을 것이라고 봤다면 안이한 접근이다.

정부는 포장만 요란한 경기 회복에 매달려 재원 활용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 된다. 속도와 규모와 내용이 조화를 이루는 ‘질 좋은 경기부양’을 추진해야 한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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