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현대의 戰士들

  • 입력 2009년 2월 4일 03시 01분


지난 25년간 전 세계 내란, 국가 붕괴 현장을 목격한 미국 외교전문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로버트 캐플런은 책 ‘전사(戰士) 정치학’(Warrior politics·2002년·국내 번역서 ‘승자학’)에서 오늘날 분쟁의 특징을 잘 짚고 있다.

현대사회는 전쟁 과정에서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을 따르기 쉽지 않다. 대부분의 군사행동이 전광석화처럼 빠른 공습과 컴퓨터 시스템 파괴로 이뤄지다 보니 병력 사용을 결정할 때 의회와 일일이 상의할 시간이 없다.

국가분쟁보다 민족분쟁이 많다 보니 국제법도 힘이 없다. 참상을 생중계하는 TV와 인터넷은 ‘휴머니티’라는 이름으로 전쟁의 본질을 호도할 위험도 있다. 사람들은 참혹한 전쟁을 스포츠 중계 보듯 하며 “당장 뭐라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자기 나라 주가(株價)만 떨어지지 않으면 이내 무관심해진다.

무엇보다 ‘싸우는 사람’이 다르다. 현대 분쟁지역 내 군인들은 제1, 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전처럼 규율이나 도덕, 애국심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한 전사가 많다. 그래서 더 무자비하고 잔인하다. 대표적인 게 자살폭탄테러범들이다.

이들의 신념 밑바닥에는 분노가 깔려 있다. 캐플런은 파키스탄 이슬람 학교에서 전사들이 배출되는 현장을 목격한 뒤 “오늘날 전사들은 세계화에 따른 소득 불평등에 화가 치민, 개발도상국의 젊은 실업자들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캐플런이 지적한 여러 특징과 부합한다. 양측의 참상은 실시간으로 퍼졌지만 유엔 중재나 국제법은 무력했다.

게다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위협하는 하마스는 집단이지 나라가 아니라는 점에서 현대적 ‘전사’ 조직체다.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앞세우고 있지만 극단적 반미(反美), 반서방을 기치로 내걸고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헤매는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의 분노를 결집시킨 무장테러조직이다.

팔레스타인의 인명 피해가 컸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측 공세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테러조직에 대항한 국가의 자위권이라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마스는 수년간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향해 로켓 박격포를 쏘아댔다. 손바닥만 한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로서는 위협적이다. 게다가 팔레스타인 일간 ‘알쿠드스’가 주민 103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해보니 67%가 ‘잘못한 일’이라고 답할 정도로 대다수 주민은 하마스의 로켓공격에 반대한다.

‘뺨 정도 맞은 것 가지고 기절시킬 정도로 때리느냐’는 이스라엘을 향한 비난은 국가와 국민을 위협하는 테러 앞에 서보지 않았다면 무책임할 수 있다. 제3자 쪽에서야 선린우호만이 답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무력으로 위협하는 세력에 얕잡아 보여서는 공존은 고사하고 생존 자체가 위험하다.

냉전시대 전쟁에는 선과 정의가 분명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많은 분쟁은 가자지구 전쟁처럼 단순히 반전(反戰)이라는 잣대만으로는 볼 수 없는 복잡함이 존재한다.

상대가 지도에서 없어지기를 바라며 순교도 불사하는 전사들에게는 ‘선(善)과 정의’를 설득하기 이전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힘과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가 우선이다. 중동과 함께 세계 2대 화약고인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허문명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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