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병호]용산 참사, 공권력 확립 계기로 삼자

  • 입력 2009년 2월 2일 02시 58분


용산 참사는 한국형 비극이다. 사건의 발단과 진행도 그렇지만 참사 이후 벌어지는 과도한 정쟁도 국제적 통념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한국 특유의 현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 비극을 정쟁거리로 삼으라고 부추기니 다른 선진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형국이다.

다른 나라도 철거민(Squatter) 문제를 안고 있다. 처리 과정에서는 늘 갈등과 충돌이 있게 마련이다. 어디에서나 철거민은 불쌍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불법행위는 별개의 사안이다. 불법이 자행되면 누구든 법대로 엄정히 다루는 것이 선진국의 통례다.

용산 사건과 유사한 폭동이 만에 하나 뉴욕이나 파리, 런던 등 다른 선진국 도심에서 발생했다고 가정하자. 당국의 대응 방식은 우리보다 더 엄정했으면 엄정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의 건물을 불법 점거해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더구나 화염병, 시너병, 새총 등 흉기로 무장해서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이라면 책임 있는 정부는 결코 진압을 미루는 여유를 가질 수 없다.

이번 사건의 진압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경찰관을 포함해 6명의 귀중한 인명이 희생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 과잉진압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는 정당한 비판이 아니다. 과잉진압이란 저항 의지가 없는 피의자에게 과도한 폭력을 쓰거나 총기를 사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번 사건은 이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이 화염병과 시너로 격렬히 저항한 공무집행 방해 케이스이다.

경찰이 즉각적인 진압에 나서지 않았다면 식량까지 준비한 점으로 보아 사태가 장기화됐을 것이다. 많은 선량한 국민이 다칠 수 있고 촛불시위 때처럼 장사도 못하는 피해를 보았을 가능성도 크다. 그 이후의 진압 과정에서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번 사태는 졸속진압이나 과잉진압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법 집행의 격렬한 충돌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발생한 비극적 우발사고일 뿐이다. 투입된 경찰특공대가 잘못했다고 경찰 총수를 몰아붙이고 사퇴를 위한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일은 온당하지 않다. 법 집행은 글자 그대로 추상같아야 한다.

법 집행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사고의 경위와 책임을 엄정히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공권력 자체를 약화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정쟁거리로 악용해서 법치의 근간이 흔들리게 해서는 안 된다. 최근 많은 정치인이 경찰을 주로 질타한다.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 편이라는 정치적 인기를 겨냥하는 듯하다. 개인의 정치적 인기를 위해 민주주의 체제의 근본인 법치를 훼손하는 일을 벌여서는 안 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근면 정직 성실 애국심과 같은 전통적 가치를 되살려 난국을 극복하자고 말했다. 그는 경제 정책을 말하지 않았다. 법치라는 민주주의 규율 속에서 전통적 가치를 되살려 위기를 극복하자고 말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어떤 경제 대책도 소용없다.

이번 사건으로 경찰이 흔들리고 공권력이 더욱 주눅 들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당한 의사 표시라도 불법적으로는 안 된다는 마인드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 용산 참사가 법치 확립에 기여하는 계기로 승화된다면 불행하고 안타깝게 희생된 영령은 진정으로 위로받을 것이다.

이병호 울산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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