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준모]‘비정규직→무직’ 추락 막아야

  • 입력 2009년 1월 31일 02시 59분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의 늪이 깊어가는 상황에서 노동문제로 말미암아 한국경제 회복의 발목이 잡힐까 우려된다. 고용위기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라, 기간제 고용기간 2년이 도래하여 사용자가 무기계약자로 전환해야 하는 올 상반기부터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이직이 점차 확대되면서 6월경에 정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노무현 정부 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노동시장 이중구조화가 우려되다가 최근에는 정규직-비정규직-무직자로 노동시장 삼중구조화가 더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정규직-비정규직 차별문제는 현재의 위기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안일한 주제이며 비정규직에서 무직자로의 추락이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필자는 그간의 비정규직법 논의가 경제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기보다는 이익단체와 정치인의 조직논리 틀 안에 갇혀서 전진도 후퇴도 못하는 작금의 형국이 되어 왔던 사실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노사단체는 겉으로는 비정규직법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지만 속내는 복수노조, 전임자 제도의 정치적 교환 전략으로 비정규직법 개정 여부를 도구화한다는 비판도 많다.

비정규직법은 전체 근로자 10%대의 노동조합원과 이에 대응하는 사용자의 관계법의 영역이 아니라 전체 국민과 정부 간의 관계법이라 정의하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다. 정치인도 이 법이 괜히 노사관계 불쏘시개가 되어 내 손에 폭탄이 돌아오지 않기 바라는 폭탄돌리기 식의 태도를 보여 오다가 최근 당정협의를 통해 개정입법에 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제위기에 봉착한 작금의 상황에서 정부의 2월 비정규직 입법개정 방향에 대해 조언하고자 한다. 첫째, 비정규직법을 정규직 전환 지원 및 불법파견 억제정책과 최적 조합을 이루도록 제시해야 한다.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연장할 경우 비정규직의 기간 종료 이전에 무기계약 전환을 조기에 집행하는 사업장의 경우 세제혜택과 임금보조 등 고용안정을 위한 획기적인 지원정책을 같이 제시해야 한다. 파견의 경우 사용직종을 네거티브 방향으로 확대해도 불법 파견 등의 전과가 있는 사업장에 근로감독을 철저히 하고 더 나아가 사용을 불허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둘째, 노사의 합의를 무리하게 구하기 위해 복수노조-전임자 제도 원칙이 훼손되는 정치적 밀약을 정부나 정치권이 해서는 곤란하다. 시간의 게임에서 불리하기는 노사도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2월 입법이 노사의 저항으로 어렵게 된다면 복수노조-전임자 관련 제도를 3, 4월에 원칙에 맞게 입법 완료하고 기존 비정규직법으로 기간제 근로자의 실직이 심각해지는 7월 이후에 개정을 시도할 수 있다.

이렇게 할 경우 조기 개정의 기회를 잃음으로써 비정규직 근로자의 희생은 불가피하고 입법 개정에 반대한 노사 주체에 대한 책임론 공세가 가열될 것이다. 7월 이후의 이런 상황 전개를 노사가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노사정 비상대책 기구를 통해 대승적 타협에 성공한다면 비정규직법 개정은 훨씬 순조로울 수 있다.

셋째, 비정규직 관련법은 우리만 이렇게 자주 바꾼 것은 아니고 외국도 환경변화에 맞추어 개정해 왔다. 천년만년 갈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 법을 바라볼 필요가 없다. 노동시장 데이터가 축적되면 과학적 분석 결과를 토대로 더 나은 입법설계를 해 갈 수 있다.

그러나 일자리 질을 따질 때가 아니라는 기획재정부 차관의 말처럼 지금은 고용위기 상황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다소의 일자리 질을 포기하더라도 일자리 양을 늘리는 정책과 입법이 필요함을 인정해야 한다. 비정규직 입법을 논의하면서 국민과 국익이라는 대승적 관점에서 노사정의 타협을 기대해 본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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