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영어로 말하기 평가’ 교사는 영어로 할 수 있나

  • 입력 2009년 1월 23일 02시 58분


서울시교육청이 중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 영어과목 내신성적에 ‘영어로 말하기 능력’을 10% 이상 반영하기로 했다고 한다. 영어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점수 따기가 아닌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에 있으므로 말하기 강화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읽기와 듣기 위주의 영어교육을 하다가 치밀한 준비도 없이 갑자기 말하기 평가를 들고 나오니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당혹해할 만하다. 영어로 질문하며 평가해야 하는 교사들이 속으로 더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당장 3월 새 학기부터 평가를 시행한다니 영어권에서 살다 온 학생이나 일찌감치 사교육을 받은 학생이 아니라면 따라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영어 말하기 능력은 몇 시간 더 공부한다고 쉽게 느는 게 아니어서 충분한 교육 기회가 없었던 학생들에게는 불공정한 게임이 될 수도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새 학기부터 모든 초중고교에 영어 말하기, 듣기 수업을 일주일에 한 시간 이상 의무화하고 상반기 중에 영어 말하기, 쓰기 평가모형을 개발해 보급하겠다고 했지만 순서가 잘못됐다. 영어 수업에 말하기를 포함시켜 일정기간 가르치고, 평가모형 개발도 완료한 뒤에 평가를 시작하는 것이 순리다.

대다수 교사가 학생들의 영어 말하기 능력을 측정할 만한 실력이 있는지도 솔직히 의문이다. 2006년 교육인적자원부의 ‘중등 영어교사 심화 연수’에 참가한 전국 중등 영어교사 51명의 ESPT(English Speaking Proficiency Test·영어회화능력평가시험) 결과는 1000점 만점에 평균 576.6점으로 중학생 평균(586.5점)보다 낮았다. 제자보다 못한 회화실력으로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을까.

학생들의 말하기 능력을 향상시키려면 어렸을 때부터 영어에 자주 노출되고 영어 능통자와 대화할 기회를 많이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원어민 교사 배치 및 영어교사 연수기회 확대, 영어 TV프로그램 다양화 등으로 즐겁게 영어 말하기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평가를 서두르면 학생들이 학원 영어회화반으로 몰려가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 학교가 영어교육의 중심이 되도록 하겠다는 정책이 거꾸로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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