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진우]2월 국회, 또 싸울건가

  • 입력 2009년 1월 23일 02시 58분


어렸을 때의 일이다. TV 뉴스 해외토픽 시간에 우리와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어느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보여줬다. 제법 점잖게 생긴 중년의 정치인 두 사람이 사회자를 가운데에 두고 45도 각도 정도로 마주앉아 대담을 진행하는데 어느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의 속도가 빨라지더니 급기야 사회자 앞으로 뛰어나와 서로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대는 게 아닌가! 몇십 년이 지나서도 그 나라는 영 제대로 된 나라 같아 보이지 않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아직도 어린 나이였을 때였다. 이번에는 동아시아에 있는 모 국가의 의사당 안에서 적의에 찬 표정의 남녀 국회의원이 서로 뒤엉켜 머리채를 잡고 소리를 지르며 몸싸움 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보게 됐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 나라에 대한 인상 또한 두고두고 썩 좋지 않다.

2001년 여름 독일 베를린대를 방문해 한동안 머문 적이 있었다. 그해 8월 13일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전격적으로 신사참배를 감행한다. 경악을 금치 못한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격렬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나에게 더 충격적이었던 모습은 고이즈미의 신사참배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우리나라에서 20여 명의 청장년이 새끼손가락을 잘랐다는 사실이었다. 작두질로 손가락을 자르는 모습은 독일 TV에서 그대로 방영됐다. 영국의 BBC방송도 같은 장면을 내보냈다. 아마도 세계적인 뉴스거리였던 것 같다. 다음 날 베를린대 교정에서 만난 지인들이 뉴스를 봤느냐고 조심스레 물어보는 순간, 창피함을 이기기가 어려웠다. 민족을 위한 분노도 좋고, 애국의 실천도 좋다. 다만 방법이 적절하지 않았다. 21세기 대낮에 웬 손가락 자르기인가?

더 창피한 일이 지난 연말에 있었다. 정치의 기능은 무엇인가? 유한한 사회적 가치에 대한 무한한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갈등을 조정, 순화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이 필요로 하는 안보 치안 복지 교육 등의 서비스를 공정하고 원활하게 배분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국회가 국민을 대표해서, 또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갖고 이런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국회가 갈등 조정의 기능을 상실하고 국민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무를 저버리는 행태를 기대하지 않는다.

불행히도 지난해 12월 우리가 절대로 원하지 않는 국회의 모습을 며칠 동안이나 견뎌내야 했다. 민생을 제쳐놓은 의회 활극, 난장판 국회가 바로 그것이다. 2월 임시국회도 조짐이 썩 좋지 않다. 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와 용산 참사의 책임 소재 공방 속에 지금까지 미뤄졌던 쟁점법안은 고사하고 민생법안에 대한 논의까지도 파묻혀 버리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또다시 지난해 12월이 재연되는 게 아닌가 싶어 불안하기 짝이 없다.

용산 참사는 누가 뭐래도 가슴을 치며 통탄해야 할,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었다. 경위야 어쨌든,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일이다. 정부와 여당의 진솔한 사과와 충분한 보상, 재발 방지를 위한 최선의 조치를 과감하게 빨리 내놓아야 한다. 이 사건이 정국 혼돈의 기폭제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싸움거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 슬퍼하고 반성해야 할 참극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2월에 또 싸울지. 국회의원들이 그토록 심하게 맞부딪칠 때는 필경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의 싸움은 싸움을 통해 얻거나 지킬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잃게 한다는 게 많은 국민의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는 국회에서의 싸움에 분노한다. 국회가 민심을 헤아려 주길 바랄 따름이다.

최진우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