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오바마처럼 쿨하기

  • 입력 2009년 1월 22일 19시 48분


반미로 먹고살던 사람들 이제 큰일 났다. 버락 오바마 미국 새 대통령이 그들이 주장해 온 바를 다 하겠단다. 일방주의를 버리고 협력외교를 할 것이고, 시장은 통제가 필요하고, 미국을 개조(remaking)하겠다고 취임사에서 밝혔다. 반미 장사꾼들이 반(反)부시, 반(反)신자유주의를 외칠 근거가 사라질 판이니 앞으로 뭘로 먹고사나 싶다.

감정적 대중 위한 냉철한 리더

일단 말로 우리의 반미주의자들까지 무장해제시켜버린 오바마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이 질문에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는 시대가 요구하는 성격(character)과 기질(temperament)을 갖췄다”고 긍정적 답을 했다. 대체 어떤 성격과 기질을 말하는지는 아쉽게도 언급되지 않았다.

내가 파악한 오바마의 가장 두드러지는 성질은 ‘쿨(cool)’이다. 젊은애들이 연애하다 뒤끝 없이 헤어질 때나 쓰는 쿨이 아니라 엄청나게 냉철하다는 의미에서다. 오바마와 17년 이상 가깝게 지내온 밸러리 재럿 백악관 선임고문도 “그가 목소리를 높이는 걸 결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세계의 잘난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봤을 노(老)외교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한테서 ‘가장 지적인 대통령’이라고 평가받은 오바마지만 중요한 일이 생기면 리서치와 자문부터 한다. 회의를 열어 반대자를 포함한 모두의 의견을 듣고(이때 자신은 입 다무는 게 중요하다), 각각의 결정에 대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추정한 뒤, 그중 가장 유효성이 높을 플랜을 신중히 짜서, 장애물까지 예상해 수정한 다음엔, 흔들림 없이 실행하는 게 그의 순서이자 공식이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무서운 자기절제력까지 지녔다. 그러니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랄 리 없다.

평생 쿨해본 적 없는 나로선 쿨한 것도 타고나야 가능하다고 믿고 싶다. 그런데 오바마도 대학 졸업 무렵까지 충동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했다고 자서전에 쓴 걸 보면 쿨한 유전자는 아닌 것 같다. 쿨한 게 효과적 전략이라는 건 일찍 깨쳤다. 공부 안 하고 책임감 없이 군다고 어머니가 야단쳤을 때 오바마는 우선 어머니가 안심하도록 편안한 미소부터 지은 뒤, 어머니가 들으면 좋아함 직한 말을 할 줄 알았다. 자신이 개발한 ‘속임수’인데 흑인소년이 정중한 태도로 미소를 짓고 허둥대지 않는 한 사람들은 일단 마음을 놓고 믿어주더라는 거다.

지금까지 오바마가 보여준 모습은 북한까지 꼬리 치게 만들 만큼 세계인에게 호감을 사고 있다. 지적인 그는 시대와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자신의 목표는 분명하다. 대중은 큰 방향에서 옳지만 자기처럼 이성적이진 않다.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감성적 모습으로 구애해 목표를 이루면 된다.

오바마의 경제정책은 인간이 합리적이라고 전제한 정통경제학 대신 비합리적 인간 본성을 감안한 행동주의경제학을 활용한다. 인사는 자신의 비전을 잘 집행할 유능한 기계공을 정파와 상관없이 앉히면 충분하다. 취임식 때 꼴통목사를 초청한다고 들끓었던 집단엔 조용히 사람을 보내 대화를 청했고, 그랬더니 조용해졌다.

당신의 언어로 내 목표를 이룬다

물론 사람의 예측과 기대는 늘 비껴가므로 오바마 황홀경이 언제까지 계속될진 알 수 없다. 멀쩡하던 사람도 집권만 하면 달라지듯 쿨한 그도 언제 오만과 오류를 드러낼지 모른다. 그래도 경제가 당장 살아나기 힘들다는 건 다들 알고, 경기(景氣) 사이클은 대통령과 상관없이 움직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늦어도 3, 4년 후면 경제가 살아나 재선이 무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고 보면 오바마는 복도 많다.

오바마의 쿨함이 속임수라고 보진 않는다. 그런 척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고맙게도 심리전문가들은 ‘오바마 처세술’도 습득이 가능하다고 했다. 중요한 건 결단과 의지력이다. 더 큰 꿈을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개조할 수 있다는 믿음이 미국의 캐릭터이고, 오바마 역시 그 속에 있다.

변화는 쉽지 않다. 1월 1일부터 매일 30분 운동하겠다고 결심하고도 설까지 못 가는 게 사람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왜 오바마처럼 쿨하지 못한가를 한탄하기 전에, 일단 나부터 쿨해지도록 연습해볼 참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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