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장훈]폴슨처럼 무릎이라도 꿇든지

  • 입력 2009년 1월 13일 02시 55분


190cm가 넘는 장신의 재무장관은 아담한 체격의 여성 하원의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유대계 금융제국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라는 배경보다도, 세계경제를 이끄는 미국 재무장관이라는 자존심보다도, 헨리 폴슨에게 급했던 점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도움이었다. 지난해 가을 미 행정부가 7000억 달러의 긴급 구제금융안을 의회에 제출한 뒤 거물 재무장관은 체면 불고하고 하원의장에게 매달렸고 법안은 어렵사리 통과되었다.

우리의 연말연시를 어둡게 만들었던,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진 ‘활극 속의 국회 파업’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지난해 미국 재무장관이 보여줬던 파격적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 말로 하는 설득이 몸에 밴 미국 문화가 부러워서도 아니었고, 위기 앞에서 초당적인 합의를 이뤄내는 미국 의회의 역할이 부러워서도 아니었다.

요즘 우리 국회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과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비판의 봇물 속에서 모두가 간과하는 핵심 중의 핵심이 하나 있다. 80여 개 쟁점법안의 대치과정에서 대통령의 참모, 장관들은 어디에 있었는가의 문제이다. ‘여의도의 혈투’ 이후 국회의 윤리규정을 강화한다, 의원정수를 줄여야 한다는 제안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우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법안, 금산분리 완화 법안의 정부 측 책임자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는 묻지 않고 있다.

행정부는 국회 설득 제대로 했나

폴슨의 에피소드가 보여주듯이 행정부는 의회정치에 대한 감독관도 비평가도 아니다. 대통령과 참모들은 의회정치의 또 다른 주연이다. 실질적으로 주요 법안을 만들고 추진해온 정부의 역할이 여의도로 법안을 배달하고 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여당과 야당을 아울러 설득하는 능력, 그것이 곧 행정부의 능력이다.

문제가 여기에 이르게 되면 행정부는 예전처럼 여당과 ‘조율’하기 어려운 사정, 야당과의 대화가 유발할 ‘오해의 가능성’을 거론할 것이다. 이 같은 오래된 방패 뒤로 숨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피신이 변화한 환경에 처한 세종로와 여의도의 관계를 정상화하지는 못한다.

입법과정의 한 주역으로서 행정부가 인식해야 할 점은 적어도 두 가지이다. 첫째,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는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지고, 복잡해지고, 예측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점이다. 이미 확인된 바와 같이 청와대의 의지가 곧 여당 의원 다수의 맹목적이고 충성스러운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2002년에 시작된 정당 민주화의 흐름에 따라서, 또 대통령 후보 경선제의 효과로 인해서, 대통령과 여당 의원은 한 지붕 안에 있지만 각각의 셈법은 다르다. 임기도 다르고, 장단기의 목표도 다르고, 뽑아준 이들도 다르다.

여기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국무장관에 내정한 사례를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단지 거물 라이벌로 내각을 구성한다는(team of rivals) 포용력과 자신감 이외의 깊은 수가 담겨 있다. 당내 기반이 확실치 않은 오바마로서는 민주당의 요소요소를 장악하고 있는 클린턴 가문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인식했음을 당내, 언론, 국민에게 두루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힐러리에게 국무부 인사권과 대통령에 대한 직보 채널을 보장하는 방안은 오바마로서는 손해 보는 거래는 아니었던 셈이다). 결국 상대의 존재감을 인정하고, 상대의 고민과 희망을 경청할 때에 협력을 얻어낼 수 있다는 상식은 어디서나 통용되는 셈이다.

세종로, 여의도문화 알고 대처를

우리 행정부가 여야 정당과의 관계를 꾸려가는 데에서 또 하나 깊이 인식해야 하는 문제는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다. 세종로와 여의도의 거리는 몇 km에 불과하지만 청와대와 국회의 문화 차이는 서울과 바그다드만큼이나 멀다. 행정부가 대통령이라는 피라미드의 정점을 중심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조직이라면 국회는 299개의 무게중심이 상호 작용하는 ‘분권과 무질서’의 세계이다. 청와대의 시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속도전이 가능하고 이것이 때로는 미덕일 수 있다. 하지만 대화와 토론이 주된 일인 국회의 시계는 천천히 돌아간다. 국회는 속도전에 발맞추는 구조를 갖고 있지는 않다.

야당이 주도한 폭력사태나 여야의 끝없는 교착을 비판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행정부가 국회에 대한 비판에 안주할 때 폴슨 같은 일꾼은 나오기 어렵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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