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권혁세]기업, 은행주 10%보유 괜찮다

  • 입력 2009년 1월 10일 03시 04분


여야를 극한 대립으로 몰고 간 단초가 됐던 쟁점 법안 중 하나가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은행법 개정안이었다. 금산분리 완화는 지난 20여 년 동안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 숙원과제였다. 하지만 번번이 정치논리에 밀려 정확한 실상이 제대로 공론화되지도 못한 채 파묻혀왔다. 과연 금산분리를 완화하면 국내 은행은 모두 재벌의 사금고(私金庫)가 될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재벌의 은행 소유는 기우에 불과하다. 이번 은행법 개정안의 핵심은 현재 4%로 돼 있는 산업자본의 은행 주식보유한도를 10%로 늘리는 내용이다. 10%라면 경영권을 행사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지분이다. 일반적으로 인수합병(M&A) 위협 없이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은 50%+1주이고 경영권 장악에 필요한 마지노선은 30%라는 게 전문가의 공통적 의견이다.

이런 사실은 이미 산업자본이 15%까지 지분을 보유할 수 있는 지방은행의 사례를 보면 명확해진다. 부산은행은 롯데제과가 최대주주로 14.11%를 갖고 있고 대구은행은 삼성생명이 지분 7.36%로 2대 주주다. 하지만 이 은행들은 롯데나 삼성으로부터 어떤 경영권 간섭도 받지 않는다.

지분 4%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엄격한 기준이다. 금산분리의 세계적 표준인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동일인 주식보유한도를 10%에서 15%로 완화했다. 은행이 부실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자본을 쉽게 확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금산분리 완화는 국부(國富) 유출도 줄이는 효과가 있다. 현재 국내 은행 중 정부 소유인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시중은행은 모두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는다. 사실상 외국인 소유나 다름없다. 이로 인해 매년 2조 원가량의 배당금이 외국인 주주에게 지급된다. 금산분리로 외국인 지분이 낮아지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배당금도 줄어든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경기 침체로 전이될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에 금산분리 완화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은행 부실이 불어날 경우 최후의 수단은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인데 금산분리 규제완화를 통해 약 80조 원에 이르는 민간의 잉여자본을 은행이 흡수하면 국민 혈세인 공적자금을 아낄 수 있다. 또 2003년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했듯이 국내 은행을 외국 자본에 넘기는 상황도 예방할 수 있다.

금산분리 완화를 반대하는 쪽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반(反)재벌 국민정서에 호소한다. 은행 대출이 특혜로 여겨졌던 20여 년 전 상황에서는 재벌 사금고화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은행 대출의 대부분을 가계나 중소기업이 이용하는 지금 상황에서 재벌 사금고화 논리를 되풀이하는 것은 왠지 옹색하고 현실성이 떨어져 보인다.

정부는 금산분리 완화의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해 대주주에 대한 은행여신제한이나 대주주와의 거래규제 등 각종 사금고화 방지 장치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마련해놓았다. 이제 더는 금산분리 문제를 재벌에 대한 국민정서와 연계해 정치 문제화하는 태도는 당면한 경제위기 극복이나 국익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대한민국의 수출 투자 고용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 가장 취업하고 싶어 하는 대기업은 결코 규제와 감시의 대상이 아니며 국민경제와 함께 발전시켜야 할 육성의 대상이다.

권혁세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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