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하종대]대만 향한 中의 구애를 보며

  • 입력 2009년 1월 5일 02시 57분


새해가 밝았지만 남북관계는 여전히 차가운 얼음장 같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벌써 11개월째다.

현 정부가 제시한 ‘비핵개방 3000’은 북한이 비핵화와 정상국가의 길로 들어서기만 하면 국민소득 3000달러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파격적인 제안이다. 북한 주민에게는 절실한 제안이지만 김정일 정권은 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북한은 되레 금강산을 관광하던 남한 관광객을 총으로 쏘아 살해하고 개성공단 남한 측 인사의 철수를 요구하는 등 오히려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반면 몇 년 전만 해도 일촉즉발의 대결자세를 보였던 중국과 대만은 최근 완연한 봄날을 맞은 듯하다.

중국은 2000년 5월 집권한 천수이볜(陳水扁) 전 대만 총통이 줄기차게 독립을 추구하자 2005년 3월 ‘반(反)국가분열법’을 제정했다. 2007엔 대만 명의로 유엔에 가입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하려 하자 수차례에 걸쳐 ‘무력 불사’를 경고하는 등 양안(兩岸·중국과 대만)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취임하면서 이 같은 분위기는 반전됐다. 취임 한 달 만에 대화를 복원하고 6개월 만에 통상(通商·직교역)과 통항(通航·물류 및 인적 교류), 통우(通郵·우편 교류) 등 이른바 3통(三通) 실현의 전면적 교류협력 시대를 열었다.

이처럼 빠른 양측의 관계 개선은 기본적으로 양안 협력을 중시하는 국민당이 대만에서 정권을 잡았기 때문이지만 대만을 향한 중국의 가없는 ‘구애’가 큰 역할을 했다.

중국은 현재 대만의 농산물에 대해서는 특별 수입을 허가하고 대만 상품은 관세도 깎아준다. 중국에 진출한 대만 기업엔 1300억 위안(약 25조 원)의 특별지원 대책까지 내놨다.

2007년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360달러로 대만(1만7294달러)의 7분의 1에 불과하지만 대만에 대한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

또 중국은 대만이 민감해하는 주권문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하나의 중국’만 인정해 대만이 독립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한 중국 관리는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특히 ‘우리식 사회주의’에 대한 부정은 곧바로 분노를 유발한다고 전했다.

사실 ‘비핵개방 3000’은 10·4선언의 전면적 이행을 위해 필요한 14조∼50조 원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드는 플랜이다. 북한 주민의 1인당 소득을 3000달러 이상으로 만들어 주려면 몇백조 원이 들어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 남북 사이에 형성된 왜곡된 ‘물꼬’를 잡기 위한 현 정부의 노력은 정작 교류의 물꼬마저 막히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남북이 지금의 태도를 고수한다면 가까운 시일 안에 남북관계가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참으로 곧은 것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유학자들은 진(秦)나라 황제와 항우(項羽), 유방(劉邦) 등 주군(主君)을 수없이 바꿔가며 섬겼던 숙손통(叔孫通)을 절개가 없다며 비웃었지만 사마천(司馬遷)은 한(漢)나라의 의례를 정립해 400년 왕조의 기틀을 다진 그를 높이 평가했다.

우리 민족에 있어 통일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지고의 가치다. 통일에 이르는 장대한 과정에 우여곡절이 없을 수 없고 굽어보이는 게 없을 수 없다. 굽은 길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길은 원래 꾸불꾸불했다는 점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하종대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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