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정만]폭력에 우는 학교체육 지도자 교육이 해결책

  • 입력 2008년 12월 25일 02시 58분


7세 소년 데이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베이징의 경극(京劇)학교에 입학한다. 연일 이어지는 엄격한 훈련, 혹독한 매질을 견디지 못한 그는 친구와 도망쳐 나온다. 짧지만 달콤한 자유시간을 만끽하던 그들은 우연히 시장의 한 귀퉁이에서 경극공연을 구경한다. 물끄러미 경극에 빠져 있던 데이와 친구는 동시에 눈물을 터뜨린다.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그들은 서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렇게 잘하려면 얼마나 많이 맞았을까?’, ‘셀 수 없이 맞았겠지….”

천카이거 감독의 화제작 패왕별희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전근대적 교육풍토 속에서 맞으면서 배운 자의 의식은 이처럼 왜곡된다. 물론 이후 길고긴 훈련을 견뎌낸 데이는 경극의 명인으로 등극해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지만 어린 시절 그의 경험은 평생의 업보로 남는다.

우리 사회는 오랜 노력을 통해 학교나 군대에서조차 공식적으로 체벌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하지만 체육계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운동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생선수의 78.8%가 폭력을 경험했고 63.8%가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이 보고서는 학생선수가 학습권 침해, 폭력의 일상화와 위계구조 재생산, 폭력과 성폭력의 중층적 억압구조에 시달린다고 결론짓고 있다.

학생선수의 인권문제와 관련해 다양한 개선 방안이 나오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이다. 2007년 체결된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의 협약문, 국회의 ‘학원체육정상화를 위한 촉구 결의안’,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대표적이다. 한결같이 학생선수의 인권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으며 체육계 스스로의 각성과 개선을 위한 실천을 요구한다.

한나라당 제6정책조정위원회(위원장 나경원)는 최근 개최한 당정협의회를 통해 최저 학업성적 기준 준수와 합숙소의 폐지, 지도자의 자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교육과 관련 지침의 지속적 전달 방안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체육계의 전문가들은 학생선수의 인권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려면 제도적 장치 마련과 함께 현장에 대한 지속적 계도와 교육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주목할 부분은 후자이다. 직장 내 성폭력과 학원 폭력의 개선사례를 보면 폭력을 문화적 차원의 문제로 접근해 현장교육을 강조했다는 사실이 성공의 전제조건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학생선수의 인권문제 또한 문화적 문제로 지도자, 학부모, 학교 관련자에 대한 계도와 교육이 중요한다.

교육계에서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스포츠 지도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표현이다. 내년부터 스포츠 지도자를 위한 교육과정에 윤리와 관련된 부분을 정규교과에 포함시킨다고 하니 매우 고무적이다.

학생선수의 인권이 지금처럼 보호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선수 개인의 불행이라는 차원에 머무는 문제가 아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지금까지 체육계가 거둔 눈부신 성장을 폄훼할 수 있고 체육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켜 예비선수 자원의 고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뼈를 깎는 노력이 체육계에 요구된다. 체육계 안팎의 노력이 결실을 이뤄 일선 체육현장의 문화가 국민의 높아진 윤리의식에 걸맞게 개선돼야 한다. 학교 체육현장의 분위기가 일신돼 모든 학부모가 자녀를 학교 체육현장에 마음 놓고 보낼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김정만 체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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