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육정수]‘촛불’을 끈 集示法이 악법이란 말인가

  • 입력 2008년 12월 17일 20시 01분


5월 초부터 석 달 동안 이어진 촛불시위의 여진(餘震)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촛불’을 끄는 데 근거 법률이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일부 법학 교수에 의해 악법으로 몰리고 있어 안타깝다.

A 교수는 최근 교내 학술대회에서 “촛불집회는 무한한 상상력과 표현력이 분출된 장(場)이었다”고 찬양했다. 그는 “그러나 낡은 법에 의해 범죄사건으로 격하되고 시민의 진정성은 폄훼됐다”고 주장했다.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조항에 대해서도 “어둠이 불안감과 공포감을 준다는 생각은 전기가 없던 시대에서나 통용되던 것”이라며 요즘은 밤에도 일상생활이 활발히 진행되므로 야간시위를 허용하는 게 옳다고 했다.

A 교수가 극찬한 ‘촛불의 상상력과 표현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경찰관을 붙잡아 계급장을 떼고 옷을 찢어 상반신을 알몸으로 만들어 집단 구타한 것, 여대생이 경찰관에게 목 졸려 죽었다는 허위 사실을 퍼뜨리기 위해 사진을 조작한 것, 시위 현장에 유모차를 끌고 나와 아기를 위험에 빠뜨린 것, 누리꾼들이 일부 신문사 광고주와 상점을 협박한 것을 말하는가. 아니면 인터넷을 통한 응집력이나 이른바 ‘참여형 직접민주주의’의 대두를 뜻하는가.

뭔지 모르겠지만 ‘촛불’과 불법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법학 교수가 엄연한 범죄행위를 ‘범죄사건으로 격하되고 시민의 진정성이 폄훼됐다’고 평가할 리 없다. 또한 야간 촛불시위에 한 번이라도 나와 봤더라면 가로등이 켜져 있음에도 일반 시민의 불안감과 공포감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치안질서 유지가 낮보다 훨씬 힘들어 불상사의 우려가 높았던 게 사실이다.

B 교수는 정부가 촛불시위에 적대적(敵對的)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정부는 오히려 촛불시위 초기에 물렁하게 대처해 불법 사태를 더 키웠다는 여론의 지적을 받지 않았던가. 매일 저녁 시위시간이 되면 경찰이 서울 세종로 사거리를 막아 시민과 차량 통행에 극심한 지장을 주면서까지 불법 시위의 공간을 마련해줬다.

집시법 제1조는 국민의 집회·시위권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상정하고 적절한 조화를 환기시키고 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산물(産物)이라 할 수 있는 현행 집시법은 그런 점에서 권위주의 정권 때의 규제 위주 법률과 다르다. 민주적 정당성을 충분히 갖춘 것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각종 기본권이 무제한의 권리가 아니듯이 집회·시위권도 마찬가지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저마다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100% 누리려 한다면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충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그런 혼란 상황을 막을 책임이 있다.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자유와 권리를 법률로 제한할 수 있게 한 헌법 제37조의 정신이 그것이다.

교수들이 현행법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사회발전을 위해 필요한 점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 건전한 상식에 어긋나고 합리성과 균형을 잃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법학 교수는 시위 현장에 대한 탁상공론과 편향된 시각으로 법질서 훼손에 앞장서선 곤란하다. 촛불시위 진압은 헌법이 경계하고 있는 기본권의 ‘본질적 침해’가 아니다. 법을 지키는 더 많은 국민의 기본권도 소중하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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