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법과 사회]종부세, 헌재와 국민 사이

  • 입력 2008년 11월 18일 02시 59분


헌법재판소가 종합부동산세법을 무력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결정은 여야 및 보수진보 사이에 찬반 논쟁을 뜨겁게 달군다. 국민적 정당성의 한 축인 입법자로서의 국회는 헌법과 국민의 뜻에 부응하는 법률을 제정할 책무가 있다. 헌재도 입법자의 의사를 충분히 고려해 가급적 합헌적 법률해석을 해야 한다. 하지만 헌법에 어긋나는 법률은 재단(裁斷)당하기 마련이다.

1987년 헌법에 도입된 헌재는 산업화 이후에 불어 닥친 민주화를 법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그런데 1987년 체제는 작동 초기부터 분출하는 노사 갈등과 부동산 폭등으로 휘둘리기 시작했다. 이에 노태우 정부는 신도시 개발과 더불어 자본주의국가에서 유례가 없는 토지공개념 이론을 법제화함으로써 부동산 폭등의 불을 껐다. 토지거래허가제, 개발이익환수제, 토지초과이득세, 택지소유상한제가 그것이다.

시장경제와 재산권보장을 경제 질서의 근간으로 하는 헌법에서 사유재산의 사용 수익 처분은 불가침의 권리다. 그런데 토지거래허가제란 거래허가지역에서 토지를 사고팔 때에는 행정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제도다. 공동체적 가치에 기초한 극약처방적인 입법의 한 전형이다. 법학자들의 위헌 논쟁 와중에 헌재의 결정도 합헌 5, 위헌 4로 갈라졌다. 하지만 토지초과이득세와 택지소유상한제는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사라졌다.

한동안 잠잠하던 부동산이 다시 폭등하자 노무현 정부는 종합부동산세제로 대응했다. 종부세의 핵심은 가구별로 소유한 부동산에 대해 종합적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일정한 금액 이상의 부동산을 가질 경우에 중과세하는 것이다. 헌재는 종부세 자체의 합헌성은 인정하면서도 핵심적인 실현 방안은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첫째, 가구별 합산과세(부부합산과세)에 대한 위헌 결정은 부부자산소득 합산과세에 대한 위헌 결정의 연장선상에 있다. 부부합산과세는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법 논리에 어긋날 수 있다. 가(家)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법 체계도 호주(戶主)제도의 폐지에 따라 개인별 가족등록부로 대체됐다. 하지만 주택관련 법제는 개인보다는 가를 중심으로 입안됐기 때문에 아직도 1가구 1주택을 기본 틀로 삼는다. 이는 인별과세와 합산과세 중 어느 하나만이 형평과 정의라는 명제가 성립될 수 없음을 일깨워 준다. 둘째, 1가구 1주택에 대한 중과세는 헌법불합치 결정과 더불어 잠정 적용을 명했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실질적으로는 위헌이지만 법적 안정성을 고려해 잠정적으로 유지하는 제도다.

그런데 국민 일반의 법 인식은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중과세는 잘못된 것으로 보지만 가구별 합산과세는 오히려 수긍하는 것 같다. 헌재 결정과 국민의 법 감정 사이에 나타난 괴리 현상이다. 약삭빠르게 부부공동명의로 변경한 이들만 혜택을 받고 무던하게 살아 온 사람은 세금 폭탄을 맞게 된다. 결과적으로 헌재가 조세회피 방법을 가르쳐 준 셈이다.

헌법은 시대정신의 반영물이다. 시대정신은 또 헌법의 개방성에 부응해야 한다. 동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를 외면한 헌법 해석은 결코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시대정신에만 매몰된 헌법 해석은 포퓰리즘의 노예로 전락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종부세의 새판 짜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경제위기에 따라 부동산도 거품이 꺼져 간다. 부동산 폭등 때 응급 수혈에 매달리지 말고 부동산 안정기에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부동산이 축재의 수단으로 악용돼서도 안 되지만 억울한 세금 폭탄 또한 안 된다. 부동산 투기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보유에 따른 합리적 중과세는 불가피하지만, 양도소득세 감면을 통해 처분의 퇴로도 마련해줘야 한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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