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심상대]수능은 마라톤의 한순간일 뿐

  • 입력 2008년 11월 15일 02시 58분


엊그제 치른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수능 한파’가 없는 가운데 무사히 끝났다. 그러나 수험생들로서는 가슴 서늘한 하루였을 것이다. 어른의 눈으로 보면 수험생 대부분이 불쌍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교육 자체가 경쟁인 데다 우리나라 대입제도는 교육제도라기보다는 청소년 살육전과 같다. 불리한 조건으로 인해 경쟁에서 밀려난 몇몇 소수자가 보호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쩐 일인지 우등한 몇몇 학생이 성공한 소수자로 사회와 제도의 보호를 받게 돼 있다. 공동체 운영에 있어서나 개인의 존엄성이 존중받아야 하는 근대성에 비춰보더라도 지극히 야만적인 정황이 우리 청소년 앞에 놓인 교육현실이다.

1등 있으면 꼴찌도 있어

그러한 절대경쟁의 격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청소년을 위해 뭔가 따뜻한 위로의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하고픈 당부는 기왕 끝난 시험에 대해서는 집착을 버리는 게 좋다는 말이다. 자신의 실력을 십분 발휘한 경우나 그렇지 못한 경우나 마찬가지다. 인생은 한순간의 달음박질로 결판나는 스프린터의 질주가 아니라 지친 몸을 추스르며 숨찬 호흡으로 오래 달려야 하는 마라토너의 길이다. 대학입시를 결정하는 수능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바 아니나, 이 한 번의 시험이 인생 전반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건 아니다.

중학생 시절 월간지에서 읽었던 짧은 수필이 생각난다. 당시 국립대 의대 학장이 쓴 회고담이었는데, 글쓴이가 의대에 입학하자마자 6·25전쟁이 발발했다고 한다. 막 의대생이 된 3명의 친구가 피란 직전 한자리에 모였다. 부잣집 아들로 자가용이 있었던 한 친구는 식구를 싣고 부산으로 피란을 떠나겠다고 말했고, 다른 한 친구는 의대에 입학했으니까 어떡하든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시골 출신으로 가난한 처지인 자신은 반드시 의학공부를 마친 뒤 사회에 공헌하겠노라는 각오를 그 자리에서 피력했다고 한다.

세 친구는 헤어졌다. 글쓴이는 그 뒤 고학으로 미국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로 재직하다 모교인 국립대 교수로 귀국했다. 귀국한 뒤 전쟁 때 헤어진 두 친구의 근황을 접하게 됐는데, 자가용으로 피란이나 가겠다던 친구는 택시운전사를 하고 있었으며 의사는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던 친구는 시골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었다 한다.

누구나 100m 달리기 주자로 스타트라인에 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운동회에서 동무들을 경쟁자로 하여 선생님의 출발신호를 기다리던 순간의 긴장 역시 기억하고 있으리라. 입술은 바짝바짝 타고 가슴은 두방망이질한다. 그런 지독한 경쟁의 출발선상에서도 한순간의 분별력과 확고한 목표 설정이 결과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어떤 경우든 포기 말자

자신만이 아니라 경쟁하는 동무들도 똑같은 심정이라는 현실 파악이 우선 중요하다. 과도한 압박에서 벗어나 평정심을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아울러 반드시 1등을 하겠다는 각오로 출발하면 적어도 3등 안에 들지만, 3등 안에는 들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출발하면 5등이나 6등밖에 하지 못한다는 긴장감의 긍정적 작용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법칙은 비단 100m 달리기만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매번 되풀이된다.

100m 달리기든 수능이든 우열을 가리기 위한 경쟁이므로 1등이 있으면 꼴찌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동무들과 벌인 한 번의 100m 경주가 수능 성적과 대입을 결정하지 않듯이, 엊그제 치른 수능 결과가 전도양양한 청소년의 미래 전체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차지할 1등의 기회와 영예의 자리는 장래에 무수히 널려 있다. 단지 어떠한 경우라도 자기 자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며, 젊은이답게 명확한 목표 설정과 도전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는 조언을 청소년 여러분에게 드린다.

심상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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