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지오그래픽]통영 가을맛 기행

입력 2008-11-07 02:57수정 2009-09-2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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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 가을이 왔다. 사철 푸른 바다에서는 그 빛깔의 농담(濃淡)만으로는 계절 바뀜을 알아채기 어렵다. 그보다는 오히려 시장의 어물전이 좀 더 실감날 터. 통영이라면 이 가을 포동포동 살진 도톰한 굴과 그 굴에서 풍겨나는 어릿한 바다 향이 진정한 가을의 전령이다. 통영은 국내 굴 생산의 80%를 차지하는 곳. 게다가 굴도 서해안 것에 비하면 알이 굵고 살도 푸짐해 먹을 것이 많다. 서해안의 투석식(바위에 포자를 붙여 키우는 방식) 굴은 간조 때 물 밖에 드러나 플랑크톤을 섭취하지 못하니 아무래도 작다. 반면 통영 등 남해안의 수하식(수중에 줄을 매달고 거기에 포자를 붙여 키우는 방식) 굴은 늘 물 속에서 플랑크톤을 섭취하기 때문에 영양 상태가 좋아 살집이 많다. 굴은 역시 찬바람 불어야 제 맛. 그러니 입동인 오늘(7일)이야말로 통영 굴의 시즌오픈을 선언할 만하지 않을지. 가을바다 아름다운 미항 통영으로 맛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삶이 시들하거나 힘겨운가, 새벽 서호시장에 가보시라!

내게 통영 가는 길은 언제나 기대만만이다. 어딜 가도 풍치 좋은 여행지 한두 곳은 너끈히 만날 수 있고 그 바닥 누구에게 물어도 통영진미 맛볼 괜찮은 식당 몇 곳은 쉬이 찾을 수 있어서다.

늦은 저녁. 한산한 통영시내에서 객손의 허기와 미각의 갈증을 함께 풀어줄 쌈박한 식당을 찾아 어슬렁어슬렁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있을 때, 마침 이런 생각에 미쳤다. ‘그렇지. 통영하면 장어인데 장어구이는 맛본 적이 없었지.’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정작 통영에서 가장 흔하고 대표적인 장어구이는 아직 손도 대지 않았던 것이다. 통영사람에게 물어보라. 통영서 가장 흔한 게 뭐냐고. 대답은 이렇다. “짱어(장어), 꿀(굴), 멍기(멍게) 아입니꺼(아닙니까)”.

찾은 곳은 해저터널 입구 부근의 ‘일미장어구이’(미수2동). 삼겹살 굽듯 불판에 구워 소금장을 찍어 먹는 도톰한 붕장어구이. 그 담백함이 어느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진미였다. 통영에서 장어는 사철 음식이다. 물론 제철은 5∼9월이지만. 굽는 장어는 두 종류. 민물장어를 닮은 붕장어, 이보다 작고 빛깔도 옅은 먹장어(꼼장어)다. 통영에서는 수족관에서 산 것을 꺼내 즉석에서 요리한다. 요리법은 이렇다. 껍질째 토막 내 불판에 굽기는 마찬가지지만 붕장어는 양념없이 소금장에 찍어 먹고 먹장어는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굽는다. 생장어를 불에 굽는 이 단순한 요리. 그런데도 식당마다 맛에 차이가 있다. 이유는? 양념도 있지만 그보다는 장어 그 자체다. 맛난 장어가 따로 있어서다. 그러니 그런 장어를 내는 식당을 찾는 게 관건이다.

이튿날 오전 5시. 여객선터미널 건너편 서호시장을 찾았다. 한겨울을 방불케 하는 새벽 한기에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그 이른 시각에도 시장 안은 부지런한 상인들로 활기가 넘쳤다. 거기서도 가장 부산한 곳은 역시 어물전. 방한복에 목도리까지 이미 한겨울 복장으로 무장한 아낙들이 점포와 좌판을 열고 생선 다듬기에 여념이 없다.

‘세상사가 싱겁게 느껴지거들랑 시장을 찾으라.’ 그 말 그대로 시장은 살아있음을 상기시켜주는 위대한 힘을 갖고 있다. 손님과 흥정하면서도 생선 다듬기를 쉬지 않는 억척 아지매(아줌마의 경상도 사투리)의 억센 말투와 몸짓. 이 새벽에 그보다 감동적인 것은 없다. 흥정하는 두 아낙의 말투도 재미있다.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인데도 오가는 말투는 평생 함께 산 친자매처럼 친근하다. 위아래가 분명치 않은 경상도 사투리의 묘미다.

시장에서는 가격에 또 한 번 놀란다. 커다란 도마만 한 2.7kg짜리 자연산 광어. 단 두 마디 흥정 끝에 4만 원에 팔렸다. 그것도 펄펄 산 놈이. 광어를 산 식당 여주인 말로는 5인분 횟감은 될 거란다. 그런데 그녀의 주문이 특별하다. “찔러만 주세요.” 아가미와 꼬리만 칼로 찔러 피를 빼달라는 것이다. 생선은 피만 뺀 상태로 가져가 회를 쳐야 맛있단다.

어물전이 형성되는 통영수협 앞 서호시장의 골목입구. 그 옆으로 대장간 골목이 나있고 거기에 ‘원조 시락국 집’이 있다. 사골곰국 끓이듯 우려낸 장어곰국에 시래기(무청 등 우거지)를 넣고 끓여내는 이 된장국. 새벽녘 시장에 나온 어민이나 상인, 장보러 나온 이에게는 더 없이 반가운 요깃거리다. 좀 더 깊숙이 골목을 파고들면 복국 집(두 곳)과 또 다른 시락국 집에 다다른다. 콩나물만 넣고 하얗게 끓여낸 복국 한 사발, 상차림에 곁들여 나온 막회 몇 점. 통영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생선천국 서호시장의 푸짐한 아침상이다.

복국 한 그릇으로 시작된 통영 취재 둘째 날. 카페리에 차를 싣고 한산도로 향했다. 한산도는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영이 최초로 자리잡은 곳. 동시에 한산대첩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사적지인 제승당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산도 남쪽 250m 거리에 있는 추봉도를 찾았다. 지난해 두 섬 간 다리가 놓인 데다 추봉도에 일주도로가 가설돼 해안드라이브도 즐길 수 있어서다.

추봉도 해안도로는 고즈넉한 가을바다를 즐기기에 그만이었다. 차량통행도 적고 주변의 바다풍경도 아름다워서다. 바다 건너 거제도의 우락부락한 산악이 코앞에 다가오는 풍경도 좋았고 띄엄띄엄 눈에 띄는 어촌부락의 한가로움도 상쾌했다. 마을버스도 제승당 선착장에서 오간다니 굳이 차를 갖고 가지 않아도 될 터이다.

그 버스의 회차 지점은 추봉도 남단의 곡룡포. 작은 만을 형성한 포구에 옹기종기 27호가 모여사는 작은 부락인데 한때 양식업으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주민이 대부분 떠나서 노인들만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포구마을까지 도로가 놓였는데도 버스는 가파른 경사로로 500m나 올라가야 닿는 산등성까지만 운행하는 것이었다. 한 주민에게 이유를 묻자 급경사라 위험해서란다. 노인들에게 버스는, 특히 짐이라도 있을 경우에는 그림의 떡이란다. 누구를 위해 놓은 도로인지 궁금할 뿐이었다.

추봉도에서 멋진 곳을 하나 찾았다. 봉암해수욕장의 몽돌 밭 가장자리에 있는 해변산책로다. 길이는 300m밖에 되지 않지만 바위해안과 몽돌 밭이 노송의 굽은 가지 아래 놓이고 주변으로 다도해의 섬과 바다가 270도로 펼쳐지는 운치있는 길이다. 몽돌해변도 한여름 휴가를 보내기에 그만일 듯했다.

다시 돌아온 통영. 도남관광지를 향해 차를 몰았다. 이곳은 유람선터미널과 충무 마리나 리조트가 있는 관광단지인데 올해 4월 미륵산 정상(461m) 바로 아래로 오르는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가 생겼다. 승차장은 유람선터미널 부근에 있다. 산정을 향해 오르는 케이블카 안. 그 아래로 내려다보는 통영 앞바다 풍경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드디어 정상 역. 풍경이 멋지다. 그러나 감탄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15분만 더 걸어 오르면 만나게 될 미륵산 정상 아래 풍경 때문이다. ‘동양의 나폴리’라는 통영의 한려수도 바다풍경이라면 게서 봐야 제격이니까. 정상까지는 400m. 거기 서자 흩뿌린 듯 점점이 바다를 수놓은 수많은 섬들의 집합인 통영 앞바다가 활짝 펼쳐진다. 동쪽으로 서호만을 감싼 통영시가, 서쪽으로는 사량도 등 주변의 풍경이 거침없이 다가온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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