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코스피 (KOSPI) 지수 1000선이 무너졌다. 2005년 6월29일 코스피 1000포인트를 재돌파할 때 거의 모든 펀드매니저들이 "우리 생애 종합주가지수 세 자리는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에 비하면 너무 빠른 대반전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컴컴한 글로벌 금융시장을 통과하는 금융인들의 심정은 투자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금융계 현장 실무자들 중 1974~75년생 경영·경제학과 출신들이 느끼는 감회는 남다르다.
이들은 대개 92~95학번으로 1997년의 외환위기를 온 몸으로 맞닥뜨려야 했던 이른바 'IMF 세대'들이다. 대학시절 자본주의의 냉혹함을 경험한 이들은 확고한 시장이론을 습득하고 당시 100대1의 경쟁을 뚫고 금융권에 입사했다. 대략 2000년을 전후한 시기다.
7~8년이라는 기간 동안 불황도 길었지만 호황도 짧지 않았다. 그 사이 이들은 대리 과장으로 승진했고 어느덧 수 천 억원을 굴리는 금융계의 중심세대로 성장했다.
아버지 세대가 초래한 경제상황의 밑바닥과 천국을 20대 때 경험한 이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받아들이는 자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IMF 세대들'이 생각하는 현 위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는 도대체 어디쯤 서 있는 것일까? 그리고 한 집안의 가장(家長)으로서 어떤 금융 포트폴리오를 취하고 있을까?
30대 중반 금융 전문가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들어보았다.
(공통 질문사항: ¤ 위기의 원인은? ¤ 향후 전망과 대처 방안은? ¤ 어떻게 자산 포트폴리오를 해야 하나?)
1> 한국은행 조사역 A씨(34 · 재무학 석사)
¤ 단기적인 외환의 유동성 위기를 정부가 간과한 탓이고, 은행이 단기로 돈을 마구잡이로 빌려온 것을 통제하지 못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신뢰가 부족한 형국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시장에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애당초 정부가 강력한 원칙을 갖고 대처했다면 이렇게까지 악화되지 않았다. 이제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어떤 대책을 내놓더라도 시장이 신뢰하지 않는다.
¤ 모두가 겁을 먹은 상태다. 아무리 돈을 공급해도 먼저 살기 위해 돈을 내놓지 않는 상황이다. 일단 국내 은행들의 유동외채비율이 점차 상승하고 있어 걱정스럽지만 결정적인 수준은 아니다. 쉽게 말해 1년 정도는 버틸 여력이 있다는 얘기다. 향후 1년 내에 정부가 신뢰를 회복한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파국으로 갈 수도 있다고 본다.
2> 외국계 M투자은행 B과장(36)
¤ 간단하다. 예금은 100밖에 없는데 140을 대출해 쓴 거다. 거품이 끼었다는 것인데, 어느 면에서 보면 미국보다 더 심하다는 판단도 들 정도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IMF시절 경험해봤지만 해외투자가 들어와야 먹고 사는 나라다. 외국인들이 돈을 거둬들이는 데 문제가 안 생길 수 없다. 우리가 중국처럼 2조 달러를 쌓아 놓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2400억 달러를 손에 쥐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 비관적이다. 한국 경제규모가 세계12위다. 게다가 수출로 먹고산다. 전 세계적 경기침체가 오면 꼼짝없이 당한다. 까놓고 수출이 10%만 줄어도 국내 경기는 파랗게 질릴 수밖에 없다. 당장 주력 수출 분야인 조선업체에서부터 대금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몇몇 대형 건설사들은 부도난 것과 마찬가지다. 부동산 경기에 연동되는 저축은행도 흔들린다. 당분간은 답이 보이지 않는다.
¤ 무조건 현금이다. 부동산 주식 다 얼어붙을 것이다. 현대자동차 같은 제조업은 좀 낫겠지만 경제 펀더멘털이 좋지 않아 당분간 주식시장 근처에 얼씬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3> 하나은행 6년차 C대리(34)
¤ 정부의 잘못된 대처가 주가지수 200포인트는 까먹은 것 같다. 시장경제가 돌기 위해서는 망할 기업은 빨리 망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정부가 건설업체 생명을 연장해주면 20% 망할 것을 50%로 확대하는 꼴이다. 은행들의 외화 차입금 정부보증과 연장문제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독이 되어 돌아올 것 같다.
¤ 부동산이 문제인데 거품이 붕괴하면서 어느 시점에 부동산 문제가 폭발하는 지가 관건이다. 만일 부동산 경기 하락이 저축은행 부실을 불러 한국판 서브 프라임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는 파국이 올 수도 있다.
¤ 4/4분기에 투자하기 위해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지만 투자할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지금은 무조건 관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4> 국내은행계 증권사 D과장(34·CFA)
¤ 미국에서 발병했는데 전 세계가 감염된 꼴이다. 그런데 신흥시장이 저항력이 약해 피해자가 많이 발생한다는 비유가 적절할 듯싶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CEO 리스크(경제수장)가 있다. 다른 나라보다 파생상품 피해는 적은데 환율은 아이슬란드만큼 떨어졌으니 이것은 순전히 시장 신뢰의 문제다.
¤ 파국을 예상하는 것은 무모한 가정이다. 그 때는 주식 채권 부동산 그 어느 것도 남아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 펀드 보유자 중 젊은 사람에겐 더 버티라고 권한다.(반대로 말하면 은퇴자에겐 팔 것을 권유). 현재 가치를 따지고 보면 IMF 당시 코스피 지수 400 때와 비슷하다고 본다. 저점 근처이긴 한데 상당기간 이렇게 갈지도 모르겠다. 사견으로는 펀드 환매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미 올 초부터 하락세를 탄 주가다. 시장이 미리 악재를 반영해 왔다는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좋아지리라 확신한다.
5> S생명 해외투자부서 E대리(35)
"¤ 우스개 소리로 '리만 브라더스' 때문이라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장관이 시장의 요구를 거스르고 있다.
¤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다. 일단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는 시대다. 왜 돈을 움켜쥐고 안 풀고 있을까? 누군가 망할 때 결정적인 순간에 사용하기 위해 끌어안고 있는 거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누군가 쓰러지기 전까지는 이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이다. 결국은 외국인이 나서야 한다는 얘긴데, 그 때가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 현금을 꽉 쥐고 있어야 한다. 그 외에는 답이 보이지 않는다.
6> D종합금융 F과장 (35· 경영학석사)
¤ 대외적인 충격 탓이 크고 전 세계적인 버블이 빠지고 있다. 사실 경고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거품은 또 다른 거품을 낳는다'는 논리로 가려왔을 뿐이다. 자본주의가 처음 겪는 위기인 만큼 어느 정도 파급이 올지 예측이 안 되기 때문에 더 무섭다.
¤ 일단 은행이 망가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은행이 무너지면 모든 게 끝장이다. 사실 미국 주택의 거품도 심각하지만 우리 상황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미분양 아파트를 사주고 대외 단기외채를 지급 보장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연장하고 있는데 과연 그것으로 충분한지 미지수다. 건설주가 빠지면 당연히 은행주와 증권주가 빠지는 것이고, 은행채권이 부실화 되면 실물경제 타격을 입는 것은 일종의 악순환이다. 또한 미국의 부실이 현재까지 다 공개됐는지도 미지수이기 때문에 전망이 무의미하다.
¤ 펀드는 진작 팔았어야 했다. 못 팔았더라도 팔 수 있을 때 파는 게 낫다고 본다.
7> 펀드평가회사 G대리(34· 경영학석사)
¤ 우리 내재적 문제도 있지만 외부 요인에 잘못 대처한 것이 더 크다. 특히 환율 시장이 지나치게 달러 위주로 구성됐고 규모도 작기 때문에 외풍에 쉽게 흔들린다.
¤ 일단 이 패닉을 극복할지 모르겠지만 이후에는 달러가치 폭락이란 새로운 악재가 기다리고 있다. 미국이 벌써 구제금융 하겠다고 달러를 마구잡이로 찍어내고 있다.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문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항상 형태를 바꿔가며 생존해 왔기 때문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 일단 환매 시기는 늦었다. 만일 투자를 한다면 국내시장이 해외보다 낫다. 해외펀드 가입자들은 당분간 적립을 중단하는 것도 고려할만 하고, 특히 동유럽 쪽은 빠질 것을 권한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