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법과 사회]개천에서 용나게 하자

  • 입력 2008년 10월 21일 02시 59분


2008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는 버락 오바마라는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한다. 여론조사에서는 흑인 후보를 선호한다면서도 정작 투표장에서는 백인 후보에게 투표하는 브래들리(Bradley) 효과의 한계도 넘어선다. ‘자유의 여신’으로 상징되는 미국 역사는 인종차별(segregation)로 얼룩져 있다. ‘나에게 꿈이 있다(I have a dream)’고 절규하던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는 흉탄에 쓰러졌다. 그런데 가난한 아프리카 흑인 유학생의 아들이 역경을 딛고 새 역사를 쓰고 있다.

‘가난은 다만 불편할 뿐’이라는 자조를 뛰어넘어 경제적 뒷받침 없이는 현대사회에서 사회적 성공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체력을 바탕으로 하는 스포츠에서도 풍요로운 삶의 여부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힘 그 자체만으로 승리할 수 있는 육상이나 권투 같은 투기 종목에서는 단연 유색인종이 압도한다. 반면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금전적 투자가 선행돼야 하는 테니스 골프 같은 종목에서는 백인이 압도한다. 이들 종목에서 유색인종은 남자 골프의 타이거 우즈, 여자 골프의 박세리를 비롯한 한국낭자, 테니스의 윌리엄스 자매를 손꼽을 정도다. 어디 그뿐인가. 정계 관계 재계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계조차도 백인의 독무대다.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벅찬 가난한 유색인종이 자녀 교육에 투자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인이 선호하는 일류 대학이나 대학원에 유색인종 특히 흑인의 진학은 극히 미미하다. 경제적 궁핍 상태인 부모형제를 외면한 채 혼자서 공부만 하겠다는 것은 가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대학원 과정은 더욱 그렇다. 장래가 보장되는 전문대학원 과정인 로스쿨이나 메디컬스쿨에 흑인의 진학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에 당국은 성적이 다소 부족하지만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에게 진학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적극적 평등실현조치 또는 잠정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를 시행한다.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란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아 온 집단의 차별로 인한 불이익을 보상해 주기 위해 집단의 구성원에게 진학, 취업과 같은 사회적 이익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부여하는 정책을 말한다. 이는 기회의 평등보다는 결과의 평등과 실질적 평등을 추구하는 정책이고, 개인보다는 집단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며, 항구적 정책이 아니라 구제 목적을 달성하면 종료되는 잠정적 조치다. 이로 인해 흑인보다 더 좋은 성적을 획득했음에도 같은 대학의 진학에 실패한 백인 학생이 오히려 역차별이라며 위헌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법원은 제도 자체의 합헌성을 인정한다. 이 조치 덕분에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이 좀 더 많은 사회 지도자를 배출한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헝그리 스포츠’란 은유적 표현은 개발연대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내고 챔피언에 등극하면 일약 스타로 자리 잡으면서 부와 명예를 한손에 움켜쥘 수 있었다. 스포츠뿐 아니라 가난한 수재가 고등고시 합격을 통해 신분 상승을 이루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부도 남녀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와 유사한 제도를 시행한다. 공무원의 양성평등 채용 목표는 이미 달성됐다. 여성의 정계진출 보장을 위한 비례대표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 선거의 여성공천 할당제도 있다.

헌법상 보장된 교육의 기회균등 원칙은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대학입시에서 장애인 농어촌 학생 특별전형과 지역균형 선발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미흡하다. 능력 있고 우수한 학생들의 수학 기회가 보장돼야만 사회 통합에도 기여한다. 속된 말로 개천에서 용이 많이 나와야 우리 사회의 건전성도 담보할 수 있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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