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2개의 과거사 관련 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수천억 원의 국민 세금이 들어갔다. 그러나 광복 이후의 시대를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한 역사’로 규정한 자학사관(自虐史觀)과 국민 편 가르기 코드로 인해 과거사위원회는 처음부터 진실과 화해, 국민통합의 순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오히려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킨 측면이 있다. 위원회 간의 기능 중복도 많았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위원회 통·폐합을 약속한 것은 그런 폐해 때문이었다. 이 정부는 일단 활동기간이 명시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등 4개는 기한이 끝나는 대로 폐지하고, 나머지는 진실화해위원회로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도 올 1월 관련 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통·폐합 법안은 17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정부는 “통·폐합 법이 통과되지 않았다”며 내년에도 각종 과거사위원회(김대중 정부 때 만든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와 ‘5·18 보상위원회’ 포함)에 2000억 원이 넘는 세금을 책정했다. 그 사이 당초 올 7월이면 활동시한이 끝나게 돼 있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시한을 연장했다.
과거사위원회의 할 일이 많이 남은 것도 아니다. 내년 예산을 보면 사업비는 줄고, 대신 인건비가 늘어났다. 위원회마다 사무처나 사무국을 별도로 두고 있어 인건비를 줄일 수 없는 구조다.
정부는 “국회에서 법안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국회는 이와 관련해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혈세가 새는 구멍을 뻔히 지켜보면서도 방치하는 것은 중대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