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與野, 추경안 政爭 일삼을 상황 아니다

  • 입력 2008년 9월 17일 03시 02분


여야 정치권은 미국발(發) 금융 허리케인을 보며 “비상한 각오로 대책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촉구했지만 위기의 폭과 깊이를 생각할 때 정부에 상투적인 주문만 할 때가 아니다. 정치권부터 초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제안한 것과 같은 ‘초당적 비상협의체제’를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해봄 직하다.

여야는 11년 전 외환위기의 쓰라린 기억을 되짚어봐야 한다. 태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겹치면서 원화가치와 주식시장이 폭락을 거듭하자 정부는 뒤늦게 금융개혁의 시급성을 깨닫고 1997년 11월 13개의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있던 여야는 정작 금융위기 수습에 필요한 법안은 다 제쳐두고 정치적 부담이 덜한 법안 3개만 통과시켰다. 국가적 위기상황이었지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나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에게는 대선이 먼저였다. 외환위기를 막지 못한 주된 책임은 김영삼 정부에 있었지만, 노동법 파동 증폭 등의 대여(對與) 공세로 정국을 뒤흔든 ‘DJ 야당’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요즘 여야가 추가경정예산안의 국회 처리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면 자꾸만 그때 악몽이 되살아난다. 한나라당은 리더십도 대야(對野) 협상력도 없이 우왕좌왕하다 기초적인 국회법 절차조차 지키지 못했다.

민주당은 예산결산위원회의 추경안 처리 합의시한을 불과 몇 시간 남겨놓고 느닷없이 14개 사업, 2조9000억 원을 증액하자고 쪽지를 내밀었다. 문제의 쪽지에는 왜 증액이 필요한지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대상 사업의 제목과 액수만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그건 우리가 희망하는 증액 요구 리스트에 불과했다”는 식으로 무책임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오죽하면 함께 예결위 심의에 참여했던 자유선진당 류근찬 정책위의장조차 “민주당의 태도는 심사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정책정당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며 혀를 차겠는가.

경제계는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의 실체(實體)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 사이에 불안 심리가 확산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시급하다며 정치권의 대승적(大乘的) 협조를 호소하고 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도 “미국발 위기가 국내화(國內化)하지 않도록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라면 지금 추경안을 놓고 정쟁(政爭)을 벌일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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