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양섭]캅카스와 동북아시아

  • 입력 2008년 9월 10일 02시 56분


오늘도 지구촌에는 뉴스가 넘쳐난다. 유감스럽게도 전해오는 소식은 좋은 뉴스보다 나쁜 뉴스가 많다. 평화보다는 전쟁이, 질서보다는 테러와 시위에 관한 게 훨씬 많다.

그 가운데 흑해 연안의 캅카스(Kavkaz) 지역이 근 한 달째 국제뉴스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우선 그루지야전쟁이다. 전쟁은 미국의 지원을 믿은 그루지야 측의 도발에 러시아가 응징한 것으로 돼 있다. 물론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난민이 발생했다. 전쟁의 원인에 대해 설이 많지만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오시프 스탈린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루지야 출신이지만 민족을 버리고 ‘이즘’을 택한 인물이다. 이즘에 방해되는 민족주의 싹을 없애기 위해 인종을 섞는 강제이주 정책을 폈다. 그 결과 그루지야 내에 인종섬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가 생겨났다. 휴전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독립을 주창하고 있어 불씨는 남아 있다.

그루지야전쟁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지난주 캅카스에 좋은 뉴스도 있었다. 그루지야 바로 옆 나라인 아르메니아와 터키의 정상이 월드컵 예선전 축구 경기를 함께 보면서 증오를 털어내자며 악수한 것이다. 두 나라는 종교가 그리스정교와 이슬람교로 다른 데다 1915년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문제로 근 100년간 반목해 왔다.

터키의 유명 작가 오르한 파무크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1년 전쯤에 학살을 거론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아르메니아인 100여만 명이 학살됐는데도 모두 입을 닫고 있다”고 양심선언을 했다가 법정에도 불려가고, 우익으로부터는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이런 두 나라가 학살 문제를 공동으로 조사하기로 하는 등 화해의 물꼬를 텄으니 다행한 일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첫발은 뗀 셈이다.

캅카스 지역은 종교와 문화, 인종, 강제이주로 얽힌 역사 때문에 20세기 내내 전쟁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있는 극동지역도 캅카스 못지않다. 20세기에 들어서만 전쟁과 식민, 영토 문제로 얽히고설켰다. 동북공정에 독도, 야스쿠니신사 참배, 댜오위 섬 영유권 문제 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 오죽하면 카네기재단의 한 연구원이 ‘무분별한 국수주의와 이웃 국가 간 혐오의 감정 때문에 화합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아시아의 시대는 아직 멀었다’고 했을까.

최근엔 중국의 혐한(嫌韓) 분위기까지 가세해 시끄럽다. 쓰촨 성 대지진에 대해 “티베트 사태 때문에 벌을 받았다”는 식의 우리 누리꾼의 댓글이 한류에 호감을 가졌던 중국 인민을 돌아서게 했다. 이후 베이징 올림픽에서 보았듯 우리 선수단은 다른 나라보다 더 홀대를 받았다. 심지어 난징 대학살의 원한을 갖고 있는 일본을 응원했다고 한다.

과거에는 갈등이 집단, 나아가 국가 간으로 번져 가는 데 오래 걸렸지만 요즘은 순식간이다. 서로 상대의 반응을 살피면서 대응하는 인터넷 시대라 그 파급 속도도 더 빠르다. 파장도 더 크다.

한쪽에서는 과거의 증오를 풀기 위해 어려운 과정을 밟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훗날의 불씨가 될지도 모를 증오의 씨앗을 너무도 쉽게 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말 한마디와 부정확한 정보 하나로 엄청난 국가사회적인 비용을 치르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윤양섭 국제부장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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