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광표]태극기와 애국가

  • 입력 2008년 8월 26일 03시 01분


“아빠, 저 태극기는 잘 그려진 거야?”

베이징 올림픽 기간 TV를 통해 한국 선수들의 시상식 장면을 지켜보던 초등학생 딸아이는 이렇게 물었다. 베이징 올림픽에 사용될 태극기가 잘못 그려졌다는 본보의 8일자 기사 내용을 딸에게 말해줬더니 그 뒤로 태극기를 볼 때마다 이런 궁금증이 들었던 모양이다.

기사의 지적대로 올림픽 초반엔 거의 모든 태극기가 잘못된 것이었다. 다행히 올림픽이 중반을 지나면서 제대로 된 태극기들로 교체되었지만 딸아이의 궁금증은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잘됐다”, “잘못됐다”고 대답은 해주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그럼, 아빠가 제대로 된 태극기 좀 그려줘”라고 말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올해 8월, 서울과 베이징의 하늘은 태극기로 물결쳤다. 그러나 그 태극기는 상당수가 엉터리였고 중국산 싸구려였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한다. “우리 태극기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좀 단순해야 외국인들도 그리기 쉬울 텐데”라고.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태극기를 알려고 노력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최고의 국가 상징인 태극기. 이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은 심각할 정도다. 태극기 그리는 법과 게양법 등에 대한 무관심은 말할 것도 없고 태극기의 기원과 변천사 등에 대해선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부분 ‘1882년 10월 수신사 박영효가 일본으로 건너가는 배 안에서 태극기를 만들었고 이를 정부에 보고해 이듬해 3월 조선의 국기로 공식 제정됐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

조선의 국기로 제정됐을 당시 그 원형은 과연 어떤 모습인지, 천지인(天地人) 합일의 정신이 어떻게 구현되어 있는지 등에 대해선 본격적인 논의도 부족했고 관심도 적었다.

또 다른 국가 상징인 애국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작곡가는 안익태” 정도만 알고 있을 뿐 작사자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 어느 외국인이 “한국의 애국가 가사는 누가 썼느냐”고 물어본다면 과연 뭐라 답할 것인가.

이에 대해선 안창호설, 윤치호설, 민영환설, 안창호 윤치호 공동 작사설, 심지어 한민족 공동 창작설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로 결론 내리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결론의 어려움이 아니라 다양한 견해에 대한 교육과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가 작자 미상으로 발표한 이래 간헐적으로 논문이 나왔을 뿐 본격적인 논의는 없었다. 일부에서는 “공동 창작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지만 그 가능성조차도 수많은 논의를 통해 많은 국민이 알고 있어야 한다.

29일은 1910년 일제에 국권을 상실한 국치일(國恥日). 태극기를 걸 수 없고 애국가를 부를 수 없게 된 날, 우리의 깃발과 노래를 잃어버린 날이다.

깃발과 노래는 한 집단, 한 민족의 기개와 희망을 상징한다. 우리는 깃발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시련을 헤치고 미래를 꿈꾸어 왔다. 시인 유치환이 “저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노래한 것도 바로 깃발의 상징성이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60주년인 2008년 8월. 그 뜨거움의 상징은 단연 태극기와 애국가였다. 태극기와 애국가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다양하고 진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이광표 사회부 차장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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