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녕]‘쇠고기 수렁’에 빠진 민주당

  • 입력 2008년 8월 17일 20시 14분


뭔가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하고 맞은 2008년이건만 365일 중 230일이 지나도록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세월이 거꾸로 흐른 듯한 느낌이다. 지난 넉 달간 ‘쇠고기 소동’으로 온 나라가 상처투성이가 됐건만 아직도 그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쇠고기 촛불시위는 이제 무엇을 주장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변질됐지만 100회를 넘기고도 멈출 줄 모른다. 학계에서나 다루면 적합할 이념 문제가 거의 모든 사회 이슈와 결부되면서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부는 그 뒤치다꺼리하느라,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느라 출범 6개월이 다 되도록 일다운 일 한번 못해봤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경축사를 통해 새 출발을 다짐했지만 아직은 미덥지 못하다.

국회는 왜 존재하는지 모를 정도이다. 기초적 국정이나마 굴러가게 하고 서민의 민생고를 덜어주려면 법안 통과의 톨게이트인 국회가 정상 가동해야 하건만 18대 국회는 임기 시작 80일이 지나도록 아직 원(院) 구성조차 못했다. 여당은 무기력하고, 매사를 원 구성과 결부시키는 야당은 무책임하다.

민주당의 처지가 딱하긴 하다. 촛불시위에 편승해 거리를 떠돌다 국회로 돌아온 명분이 쇠고기협상 국정조사와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인데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이대로 물러서면 무력한 야당, 실없는 정당이라는 소리를 들을 테고 그렇다고 국회 정상화를 마냥 외면할 수도 없다. 따가운 국민의 눈총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이럴 때 진짜 필요한 것이 지도부의 리더십이다. 민주당이 원 구성에 합의한다고 욕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책임 있는 야당이라면 15% 안팎의 지지자만 의식할 게 아니라 나머지 85%의 국민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국회 운영을 볼모로 삼은 것은 애당초 전략의 미스였다.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원 구성을 강행한다면 민주당의 선택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 식의 가축법 개정은 국정을 맡아본 적이 있는 정치세력의 주장치곤 터무니없다. 가능하지도, 온당치도 않은 쇠고기 재협상을 하라는 것과 뭐가 다른가. 더구나 광우병 공포가 실제와는 거리가 먼 것임이 속속 드러나지 않았는가. 만사 튼튼하게 예방해서 나쁠 게 뭐냐고 강변할지 모르나 홍수가 무섭다고 하천 제방을 무한정 높이 쌓고, 교통 체증을 예방하자고 도로 폭을 무한정 넓힐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쇠고기 파문은 우리에게 값진 교훈을 남겼다. 하찮은 불씨라도 소홀히 다뤘다간 큰코다칠 수 있음을 알았고, 협상이든 국정이든 기본에 충실해야 뒤탈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조작된 여론이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음도, 대의정치가 작동을 멈추면 ‘거리정치’가 그 빈자리를 메우게 된다는 사실도 목격했다. 선거는 요식행위에 불과할 뿐, 아직도 우리 사회엔 그 결과에 기꺼이 승복하는 실질적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했음도 보여줬다.

이제는 ‘쇠고기의 수렁’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제까지 쇠고기 타령만 하다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할 순 없지 않은가. 정부와 국회부터 시범을 보여주길 바란다. 특히 민주당의 대승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뒷다리를 잡는다는 인상을 주기보다는 경쟁력 있는 자신들만의 패를 개발해 정부 여당과 자신 있게 겨뤄보라.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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