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세형]“협박 두려워 기자회견 못하겠습니다”

  • 입력 2008년 8월 5일 02시 59분


4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정동 세실레스토랑. ‘바른 시위문화 정착 및 촛불시위 피해자 법률지원 특별위원회(시위피해특위)’ 주최로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엔 촛불시위로 피해를 본 광화문 상인 3명이 나오기로 돼 있었다. 상인들은 촛불시위를 주도한 국민대책회의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낸 뒤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전화 협박과 구체적인 피해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불참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들의 이름, 얼굴, 상호가 공개되면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시위피해특위 위원장인 이재교(변호사) 인하대 법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상인 10명을 섭외했으나 전화 협박에 시달리고, 얼굴과 이름이 공개되는 게 두려워 결국 3명만 나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오전 9시경 이들마저도 ‘자신이 없어서 도저히 못 하겠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 영상취재 : 임광희 동아닷컴 인턴기자

시위피해특위는 상인들을 기자회견에 참석시키는 과정에서 철저한 보안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기자회견장에서 이름과 상호를 밝힐 필요가 없고, 원하면 얼굴까지 가린 채 목소리만 공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며 “그런데도 상인들은 ‘법원에 제출한 소장도 다 공개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내 신분이 공개되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두려워했다”고 전했다.

시위피해특위는 법원에 소장을 제출하면서도 법원에 양해를 구해 상인들의 상호와 전화번호는 빼고, 이름과 주소만 공개했다.

그러나 소장의 내용이 국민대책회의 홈페이지에 공개되면서 일부 누리꾼은 상호와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협박전화 등을 통해 상인들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

이를 놓고 사이버 테러라는 지적이 일자 국민대책회의 측은 “소장 공개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상인들에게 피해를 보일 의도도 없었다”고 군색하게 해명했다.

광화문 상인들은 두 달 넘게 불법 시위로 큰 피해를 봤다. 법의 힘으로 피해를 구제받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이들은 국민대책회의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러나 적법하게 구제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또다시 전화 협박에 시달리며 몸서리치고 있다.

피해를 본 사람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소송을 제기하고도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야만적인 현실. 이번 촛불시위가 피해 상인들의 마음에 남긴 또 하나의 깊은 상처다.

이세형 사회부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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