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제균]언론, 길을 묻다

  • 입력 2008년 7월 18일 02시 53분


‘조·중·동.’

어느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들어 유포했는지 모르지만, 참 가당치 않은 말이다. 동아일보 기자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신문사의 순서도 그렇거니와, 메이저 신문 3사의 ‘패거리즘’을 연상케 하는 조어(造語)의 불순한 의도 때문이다.

신문들이, 언론사들이 ‘패거리’가 될 때 언론 본연의 가치인 독립성은 실종된다. ‘조·중·동’이든 ‘동·조·중’이든, 언론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상처를 받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어쩌랴. 촛불 정국의 와중에서 보도의 진위와 관계없이 언론들끼리 치고받는 듯한 모습이 드러난 것을. 그 싸움에선 기자 훈련도 받지 않은 PD저널리즘과 도무지 언론이라고 볼 수 없는 사이비 언론의 ‘유사(類似) 기자’들이 유난히 활개를 쳤다.

2001년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으로 부임하면서 현지 정착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프랑스 외교부에서 ‘프레스 카드’를 발급받는 것이었다. 이 카드를 받으려면 월급명세서와 소속사의 자본규모, 신문 발행부수 등 구체적인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 프레스 카드를 손에 쥐어야 비로소 공식 취재활동을 할 수 있다. 이 카드를 근거로 프랑스 체류증도 발급받는다. 또 이 카드를 제시하면 박물관이나 미술관, 기념관 무료 입장 등의 취재 편의도 제공받는다.

한국에선 ‘프레스 카드’ 하면 전두환 정부 시절 언론탄압의 악몽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프랑스에선 이 제도로 사이비 언론이나 기자의 창궐을 막는다. 걸핏하면 프랑스를 자유 언론의 이상향으로 꼽는 진보세력 측에선 그 나라에 ‘프레스 카드’ 제도가 엄존한다는 걸 알기나 하는지….

7월 16일자로 국회 출입기간 2년 이상 자격의 ‘상시 출입기자’는 119개 언론사 519명이다. 출입기간 10일∼2년의 ‘장·단기 출입기자’까지 합치면 1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같은 날 청와대에 출입 등록을 해놓은 국내 언론사만 122개사, 출입기자는 217명이나 된다. “기자 이름은 접어두고 언론사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데가 부지기수”라는 게 본보 청와대 출입기자의 얘기다.

이처럼 많은 언론의 난립으로 ‘단군 이래 가장 언론자유가 만개했다’는 자조가 나오지만, 그 폐해는 심각하다. 한 대기업 홍보 관계자의 얘기. “황당한 작문 기사라도 일단 인터넷에만 띄우면 포털 사이트를 통해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진다. 우리는 광고를 내는 등 돈으로라도 때우지만 그러지 못하는 중소기업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언론 상황 때문에 국익이 걸린 외교 문제 등에 엠바고(보도유예)를 거는 것이 불가능한, 정상적인 나라에선 있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 언론이 독도 문제 등 외교안보 사안에서 똘똘 뭉칠 때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넘겨줬다”는 ‘독도괴담’으로 적전(敵前) 분열하는 게 우리 내부다.

이 모든 게 ‘주류 언론을 재편하겠다’며 저질 언론을 양산한 노무현 정부의 유산이다. 그러나 파괴는 순식간이고, 복구는 요원한 게 세상사의 이치다.

한국 언론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산업화 과정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정작 선진화의 문턱에선 일부 언론의 이전투구와 저질보도로 언론 전체가 나라 발전에 발목을 잡는 듯 비치는 작금의 현실이 부끄럽고, 또 슬프다. 오호통재(嗚呼痛哉)라.

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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